2012년 4월 29일 일요일


   
         어머니
                             윤화진

동내에서 이름난 미인이 셨다
딸 이쁜집이라고 소문나 있었다
혹 문밖으로 츌타를 하시면
요지음 연예인이라도 보듯 구경감이였다
차려 입으신 옷은 비단 날개 같았고
완고하신 할아버지께선 늘 못마땅해 하셨다
아들 앞에선 버선도 못 벋으신 어머니
평생 소리내어 웃스시는 모습을 본적이 없었다
아들하고 밥상도 함게 안하시는 집안 내력과
가부장적인 패습에 져저 사셨다
나는 당연히 그런 줄만 알었다
집안 손님이 오면 얼굴도 못 내미셨다
전쟁중에 시장에서 곡식도 장만하시고
내가 대학 들어가 군대에서 돌아오니 사항이 좀 풀렸다
미국유학에서 돌아오니 무척이나 기뻐하셨다
그래도,
소리내어 웃는 모습은 돌아가시기 까지 없었다
아들 앞에서 눈물 지으시는 모습도 없었다
평생 화내신 적이 없으셨다
조용하신 성녀같은 분이셨다
나는 해외 오래 사느라 효자 노릇 못했다
어머니 지금 어디 쯤 계세요?
지금 소리내어 한번 웃어 보세요



* 외가 댁은 당시 서울에서 유명한 포목상점을 해서
   유별나게 옷을 잘 입으셨다.






        
             늘 멋있는 그림자

                                              윤화진

       빛으로 그리는 비슷한 모습
            실물보다 늘 멋있어요
                옆에서 보면 더 그래요
                    흐미해야 더 멋 있어요

      그림자는 먹으로 그린 묵화에요
            마음을 담으면 정감이 살어나고
                대화 없는 팜토마임을 하지요
  
       내가 나이고 싶지 않을때
            이야기를 시켜보면 알어요
                같은 모습으로 다가 와서
                   당신일 수는 없다고 고백을 해요
   
        빛이 꺼지면 살어져야 해요
            그림자는 빛의 질투를 못 이겨
                 말을 잘 드러야 해요
                    길게 만들고 짧게도 만들고
                        조각가 마음데로 되요

         그림자는 피곤하고 슲기도 해요
             해가 뜨면 생기가 나고
                 해가 지면 돌아 갈 준비를 해야 해요
                       안녕히 계세요 내일 또 봐요









2012년 4월 28일 토요일


오바마가 좋아한 시인

                                윤화진

흙백 의 갈등과 차별은
우리 좌우의 갈등과 경멸 쯤 되는가

오바마는 젊어서 부터 이런 갈등을 풀어 주는
엘리자베스 알렉산더의 시를 유난이 좋아 했다

어이없는 흙인 대통령에 당황한 백인들
유래없이 멋있는 취임연설도 썰렁하게 들렸다

서먹 서머해진 분위기
그 흙인 시인 엘리자베스
그녀의  시
그 시  한 수가 얼음짱 보다
두거운 벽을 녹히고 있었다.
일직이 시의 기능이 이렇게 큰 적이 있었을 가

시는 어름 벽을 녹힌 것이 아니라
역사를 녹혔다
시가 갈등의 역사를 넘어 섰다

인종 차별
이념 대립도
정치나 신앙이 아니라
시로서 극복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2012년 4월 27일 금요일





           파도 그대여  
                                 -사량도 바다가에서-

                                                   윤화진

파도, 그대는 잔잔히 스며드는 그리움이였네
때론, 철석이는 서러움 이였어
하얀물결 일구며  떠나는 이별
사랑찾아 떠나가는 갈매기였어

그리움 서러움 바라보는 그대
저멀리 석양을 바라보는 시인이였어

세월은 말 없이 지나 가고
파도여 그대  그리움과 서러움 안고
돌아오고  돌아가고
다시 돌아올 약속하고                
떠나는 나그네였어
              
그대는 왜 새벽바다에서
혼자 서성대고 있어요
해뜨고 바람불면 돌아 가려고 
영겁의 숨소리 죽이며
회한의 한 남기고
돌아가려 하네             

작별은 서러움만은 아니더라
저녁노을에 찾아든 잔잔한 파도여
잠시라도 더 머물다 돌아가 주오
아쉬움 남기고  떠나 간다더면
별빛같은 눈물 바치오리다                    

깊고 푸른 바다속
오색 물고기의 춤
물방로 함게 뭉쳐 파도가 되어
별따라 바람따라
머나 먼 고향길 찾아들어
휘몰아친 바람으로 바위에 부딧쳐
찬란하게 부서진 사랑의 꿈
파도 너는 노래하는 비극이 였네                    

파도여, 어찌 그리 급히 떠나려 하오
지금, 그리 떠나려 해도 보내드릴 수 없소
나는 발버둥치다 쓰러졌다오
내 서러움 모두 삼킬때 까지
흐터진 내 영혼 모두 주어 담을때까지
잠시만 더 머물어 주오
파도여, 당신이 떠나려해도
보내 줄 수 없어요
어찌 그리 급히 떠나려 하오
                    
파도여!
그대 떠난다 해도
그대로는 못보내 드려요
하늘의 별을 따서 돌아 온다해도
보내드리지 못하오
참으로, 기시는 길 어찌 그리 서두르시오

적은 아쉬움이라도 더 남기고
잠시라도 더 쉬었다 가시구려
그려면 보내는 이 마음 꽃잎되어
하늘로 날으리다

멀리 떠나는 그대를 
그리워 눈물지며
그리워 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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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26일 목요일


꿈을 꾸는 남자 이야기

                                       윤화진

그 선을 넘는 행위가
명사名詞가 되면
멍청한 죽음의  키스
그  선은 늘 혼자 넘는 
돌아오지 못할 
어둑 칙칙한 유현의 길
억지로 넘어
'자살 골'의 후회를 피한다
남자는 늘 이 길 위에서 서성댄다
남을 위한 위령곡을 연주하며
'낭만의 파도'처럼 밀려 나간다
아! 이 세상은 이길 수 없는
축구 경기 였다고, 
그래도 시를 읽으며
유유히 즐겁게
'그 선'을 넘는 꿈을 꾼다
그 선을 넘은 후 쓴 시를
미리 써둔다
'나는 시인이였어, 그래서
행복했어'

주; 일본사람들의 '죽음의 미학'과
     나 나름의 '사후의 시'를 함게 생각해 본다
     '낭만의 파도'는 가수 최백호를 위해서 쓸
     노래 가사를 생각했다






자살을 꿈꾸는 남자 이야기

                                       윤화진

그 선을 넘는 행위가
명사名詞가 되면
멍청한 죽음의  키스

그 선은 늘 혼자 넘는 
돌아오지 못할 
어둑 칙칙한 유현의 길

억지로 넘는 '자살 골'의 후회를 피한다
남자는 늘 이 길목에서 서성댄다

님을 위한 위령곡을 연주하며
'낭만의 파도'처럼 밀려 나간다

아! 이 세상은 이길 수 없는
축구 경기 였다고
이세상은 시끄러운 음악회 였다고 

그래도 시를 읽으며
유유히 즐겁게
'그 선'을 넘는 꿈을 꾼다

그 선을 넘은 후 쓰는 시를
여기 미리 남겨둔다
'나는 시인이였어, 그래서
행복했어' 라고



주; 일본사람들의 '죽음의 미학'과
     나 나름의 '사후의 시'를 함게 생각해 본다
     '낭만의 파도'는 가수 최백호를 위해서 쓸
     노래 가사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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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25일 수요일


 고향 이야기

                                          윤화진

네팔 청년이
여기 일하러 왔다가
자살했단다

그냥
듣고 넘길 수가 없어서
위로 시라도

'우리도 전에 그랬어
 미안해
 잘가, 다음 세상에서는
 고향 떠나지 말어'

시인은 눈물을 흘리며
이 억지 시를 보낸다


2012년 4월 24일 화요일


슲은 봄의 소리
                -작은 마을의 몰락을 위로하며-
                 
                             윤화진

봄이 기쁨만은 아니드라
입슬을 마르게 하는
숨가쁜  투쟁은 
모두를 피곤하게 하고 
살아지는 꽃향기는 
보라색으로 시들어 
모두 죽어가는 기적들
아담한 가지꽃으로 다시 피어나라
작은 마을 하나 살아지는 슬픔보다
더 큰 어미니의 눈물
장독을 딱고 있으랴
봄에 자란 커다란 오이 넝쿨의 영광을
무너진 마을로 돌려라
그러면 흐터져 시신도 없어진
마을의 슲음을 달래 주려나




주; 시중 숨가쁜 투쟁은 이봄에 치른 어이 없는 선거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여인 이야기

                 -The Woman Who Died In The Sleep 시를 읽고-

                                                윤화진

사투는 없었다
조용히 마무도 모르게 '그 선'을
넘어 가다
잠자는 여인 자신도 몰랐다
신의 최고의 축복
아름다운 모습만 남기고
아무런 상처도 없이
그 험하다는 산을 혼자서 넘어
꽃핀 새길을 떠나야 했다
좋아하는 시라도 한 수
읽을 걸 그랬다


 주.  최근 미국 에모리대학 시낭송회 Linda Gregerson 교수
       자작시의 느낌을 적다. 거의 한 달을 이 시의 제목과 싸움을 했다.





         만남
                       윤화진




우연은 아니다
분명
심전도 돌촐 부분처럼
리듬의 절정
왜, 붕 뜨는 기븐 있지요
시청각의 삼중주 곡은
모세의 엑서더스 를 반주하고
알지 못할 낙원으로 향했다
천상병이 노니는
소풍놀이 한던 곳
평범한 엑스타시
그가 다시 소풍하러
歸地하는 날
함게 소풍노리 할 겁니다
모두, 우리 함게 소풍합시다





2012년 4월 23일 월요일

      시간과 공간의 이론과 실제

                                                               윤화진  

      은하수를 넘어 날아갈
      알바드로스의 꿈은
      언젠가는 시간 과 공간을
      초월 하고 싶어한다


      하나님의 지배권에서 벗어난다
      아! 자유다


      시간이 없어 지고  나의 존재는 
      영원하고 
      공간이 없어지면
      천당도 지옥도 없네


      하나님은 우주밖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세상만물을 조정하실가 ?

      이론과 실제 다르기를
      바라네



 





   

The Change

                      Daniel HJ Youn


The Change promised has not yet been yet delivered.
What sort of Change ?
Better life and more jobs.

The Change is yet expected, but we need the real change,
the real one for better life and better jobs.
This time, we will also work hard for the ture and real change.


Hard working is a norm for the people from Asian countires,
not an exception. They like to be
a good and hard-working American some day.

An iligal entry is a suvival kit for subsistance living
in the afluent socity but you take away their illigality,
they became suddenly lligal under the hunger and desp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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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 서럽도록 울어도 봤다.  


윤화진


이성복이 다른 유행시인인 정호승이나 도아무게 등과 다른 것은 하고샆은 말을 느낀대로 토해내는 점이다. 그래서 자기 아버지를 X 새끼라고 표현해 믈의을 이르겼다.
보들래르도 '악의 꽃'의 시집을 냈을때 그 외설적이며 반항적인 시 때문에 법정에까지 불려가 그 시집이 금서로서 벌금형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 이시의 화자 임현아는 바로 느낀데로 토해내며 서럽게 울고불고 여행으로 도피해 짖누르는 아픔을 이기려 하는 모습이 역역하다. 오랫만에 보는 좋은 '시하사'다운 시다. 3절 9행의  이
시는 이성복을 더 연구해 보겠다고 하면서 이성복을 어느덧 닮고 있었다.


첫절 1, 2 행에서 '서럽도록 울어도 봤다. 잊혀질 것이 잊혀지지 않을 바에야' 는 끝임없는 몸부림이다. 부정의 부정으로 절박한 긍정의 가정으로 몰아가는 모습이 시적으로도 안타갑다. 기승전결
(起丞展結) 시 포멧의 멋진 기(起)의 start 이다.


성 프란시스신부를 사랑한 글라라 수녀가 장미의 가시 덩쿨에서 사모치는 그리움을 잊으려 몸을 던져 뒹구는 장면이 연상된다. 그래서 전설적으로 이탈리아 아시스의 성당에는 가시없는 장미
 꽃밭이 아직도 남아 있다. 연정 연민은 이렇게 무섭고도 강열한  것일까 ? 그래서 임현아는 차라리 '내 것인 내것이 좋다'라고  자포자기하고 돌아 서는가? 결코 그러하지 못하는 사연을 더 들어보자.


1절 3행에서 '회색 안개, 산 넘어 어스름한 빛, 더욱 서러움' 은 시적인 장식인 조경적 색체를 불러드려 서러움을 더욱 서럽게 표현하려 했다. 시적인 표현의 성공은 감성의 표현을 더욱  응고 시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행이다. 더욱 생동감 있는 단어가
필요한 곳에서 일상적인 표현이 서러움을 더욱 서럽게 해주지 못했다. 더 갈고 닥아 시에서 글라라 수녀처럼 피흐르는 그리움이 있었어야 했다. 그리고 참아 내는 인고 가 있었야 했다.


2절 1행은 입술을 깨물고 돌아서는 모습에 독자는 화자와 함게 한숨진다. 기승전결의
승에 해당하는  ' 이대로라도 좋다. 내품에 안지 못할 당신이기에' 에는 포기하지 못하는 마음을 자발적 승복 ( Voluntay Submission) 이라 하여,  심리적 업압감을 위로 받으려는 시인 다운 양보가 있다. 여기에 '시하는 사람들'의 덕목이 빛난다.


2절 2행은 은유( Metaphor) 의 수작품이다. 가고 싶지않은 여행에서 짐 꾸리기는 짜증나고 신이 날 일이 별로 없다. 그래도  '차곡 차곡' 마음을 추스려 '짝 사랑의 상쳐'가 위로 받을 것인가. 평자는 늘 짝사랑을 읊어 왔기 때문에 더 공감이 가는 좋은 메타포이다. 멀리 떠나 잊으려는 화자는 시인다운 시인으로 짐 털고 마음 털고 일어서서 간단한 짐을 챙기려하고 있다. 멋진 장면이 연상된다. 포기는 아니고 잘 정리되가는 모습이 전개되어 기승전결 중 3부를 잘 마치고 있다.


3절에서 다시 '서럽도록 울어 뵜다' 초반부를 불러 들려 내 품에 안지 못 할 "당신" 을 잊으려, 잊으려 목노아 운다. "당신을" 구체적으로 끌어 들이는 시인의 용기가  이성복 다운 시가 되 버린 것이다. 만약의 의인화 하거나 상징적으로 표현했다면 세련된 모양이야 되겠지만 여기서는 직설법이 오히려 더 빛났다.


평자는 시를 하는 시늉은 내지만 아직도 이런 직설법의 효과를 내지 못하고 이성복이 어떠하니 보들레르가 어떠니 하고 근쳐를 맴돌고 있을 뿐이다. 이성복의 " 아머지는 X 새끼" 를 퉁겨내지 못한다. 은유, 냉소, 반어법,유모어.통속어, Slang 등으로 반시를 쓰고 즐기고 있지만 스스로 불만이다.


3절 2행과 3행은 서술적이면서도 이 지독한 은유는 어디서 나왔을까. 임현아 시인의 잠제력이 펄럭인다. '개켜지지 않는 나의 옷가지' 는 아주 뛰어난 은유법. 즉 잊을래야 잊을수 없는 사랑의 미련이 '개켜질 이가' 없지요. 아무리 옷가방에 잠겨 놓려 해도 자꾸 튀어 나오는 안타까운 지나간 추억의 질긴 사연들 !!. 다시 밀어 넣어도 '고개를 내미는 옷가지' 에 다시 울어보고 애태워하는 모습으로 시를 내립니다.


끝으로 더 다듬어서 신춘문예 공모에 참여 하기 바랍니다.
성공한 창작시에 찬사를 보냅니다.










  그날- 인간이 신을 구하는 날                             
                                 
                                                  윤화진



해가 반대편에서 뜨는 날
달님이 두개가 되는날
달이 햇님을 품는 날

신부와 스님이 함게 기도 하는 날
종교와 신앙이 하나 되는 날
창세기 후편이 시작 하는 날

웃슴이 하늘을 뒤 덥는 날
평화의 종소리 들리는 날
이 세상 죄와 벌이 없어 지는 날

어이 없이 탐하다가 벌 받은날
원죄지고 대대로 나락에서 딩구던날
이제 용서 받을만한 날

그날
인간이 신을 구하는 날








   Brain-Twisting
                        Daniel H J Youn.

If you are a politician
If you are a priest
Do not twist your brain
The people will be disturbed
The church will be disrupted

If you are a professor
If you are a engineer
Do not twist your brain
The student will be exited
The mahcine will be out of order

If you are a farmer
If you are a fisherman
Do not twist your barin
The crop will stop growing
The fish will run away

if you are a tour guide
If you are a bus driver
Do not twist your barin
The tourist will not come again
The tour bus will stop no-where

if you are a business man
if you are a real estate broker
Do not twist your brain
The company will be bankrupt
The housing project will collapse

If you are a doctor
If you are a nurse
Do not twist your brain
The paitient will lose life
The hospital will go loose

* Barin-Twisting, 머리 굴리기.

    형이상학파 시를 논하다

                                                  윤화진

들어가기

벼르고 벼르다 리에 쥐가 나는 작업 (Brain-Twitsting)을 또 해야하나 보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형이사학이란 단어를 무척 싫어 했다. 요지음 일상의 권태를 느끼지는 않지만 피로를 느낀다. 보들레르는 일상의 삶에서의 권태를 죄악시 했다. 권태는 나태를 낳고 시대를 침체시킨다. 더우기 '타락한 나태의 무식한 주장'은 그 사회적 피해가 막심하다. 성공을 갈망하는 모두의 삶이 이루지 못한 욕망때문에 피로를 느끼고 좌절케 하는 시대를 어찌 피해 갈 수 있겠는가?

우리 모두 엄청나게 들고 뛰는 듯 해도 '피로의 시대' (The Age of Fatigue) 에 살고 있다. 더우기 싫어 하는 개념이나 단어를 가지고 씨름을 하려하니 자연히 주춤거리게 된다. 형이상학파의 시는 17세기 하나의 변화하는 시학적 경향으로 보여진다. 이 변화는 사회적 예술적 좌절에 대한 도전일 수 있다, 어떻한 이야기인지 알어 보자.

1.  우연히 아무런 감흥도 관심도 없이 TV를 보다가 뒷머리를 탁 때리는 어느 광고문 하나를 보았다.'변화가 진리이다' 멍청한 말장난으로 치부하기에는 버거운 내용이었다. 진리는 영원한 것으로 받아드렸는데 이 웬 변화 자체를 진리라고 하면 사고의 질서에 큰 변혁이 아닐 수 없다.

형이상학이 觀念論과 쾨를 같이 한다면, 思索은  정태적(靜態的- Static)이고 관념은 뭄직이는 생각, 動態的 (Dynamic)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뒤척이다보면  이미 하나의 가지에서 수십 수백의 가지를 낳는다.. 그래서 '나는생각한다,고로 존제한다'는 관념적 인식으로 까지 이르게 된다. 

다시말해서 형이샹학적 시의 출연은 바로 변화하는 변화를 먹고 자랄 수 밖에 없었다. 하나의 생각, 즉 동적인 관념이 수억에 달하는 뇌 세포(DNA)를 통해서 '생각의 유희' 또는 ' 지적 풍자' '奇想-Conciet' 으로 까지 화학적 변이를 이루어 시를 만들어내고 창조적 직관 ( Creative Intution) 도 이끌어 내서 예술적 창조가 이루어 진다. 따라서 '변화가 진리'일 수 있다는 명제가 성립된다. 이런 논리적인 일탈이 있다면 이는 창조를 향한 같은 맥락의  Brain-Twisting ( 머리에 쥐나기 ?) 덕분이아닌가 생각 한다.

논고의 중심인 영국 16세기 말 17세기 초반으로 돌아가면 이런 관념변환의 돌풍속에 휘말린 존 던
( John Donne)을 형이상학적 시학의 창시자로 만들어 낸다. 그가 섹스피아를 비롯한 많은 시인들이 활동한 엘리자벳시안 시대 사람으로 보아 유럽대륙의 바록크 ( Baroque)문화 영향권아래  번창하는 영국 시문학에서 벋어나려 했다.

2. 시대적 변화의 경향과 더불어 시, 그림, 음악도 변화의 흐름을 타고 바뀌고 바뀌어 오늘에 이르러 우리는 이런 '변화의 진리'의 틀속에서 그변화가 가져온 결과를 자유롭게 즐기고 있다. 시, 그림 그리고 음악의 변천사를 간략하게 나마 소개한는 것도 형이상학 시를 논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그 범위가 방대하므로 여기서는 피하고, 다만 지나친 종교적 속박속에서 자란 찬미적 예술, 성시, 성화, 고전음악에서 벋어나서 르네상스를 거치는 낭만주의, 그리고 여기서 탈피하려는 표헌주의, 초현실주의 심지어 Post Modernism 에 이르기 까지, '변화'는 그 흐름의 중심추가 됬던 것이다. 변화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 어찌 변화가 진리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형이상학적 시는 바로 이런 낭만주의 색체를 벋어나는 하나의 변화였다.

여기서 인간의 인식 수준의 변화를 미술사적인 관점에 드려다 볼 필요가 있겠다. 인간이 아직 미개해서 수천년전에 동굴에서 수렵을 하고 살던 시대가 있었다. 인간의 최초의 그림이라고 하는 그림이 이 동굴 벽에서 발견됬는데, 이들은 이 그림과 실제 동물과 구별을 하지 못 했다고 미술사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신화속에 환상이나 환영은 이런 낮은  인식수준에서 아직 사물과 환상을 구별하지 못한데서 비롯됬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성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환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궁금하다. 지금도 간혹 다소 어리둥절해서 '혼'을 또는 정신을 놓으면 이런 착각이 일어나고 이런 환각작용에 익숙하면 점쟁이나 예언가를 낳게된다. 신비적 Mystics 이나 종교적 困或에 빠저있는 종교인을 흔히 본다. 여기에 이르면 이는 인식을 제대로 못한 幼致에 빠진거나 다름없다.

이런 이야기를 왜 여기서 하느냐 하면 관념론적인 시를 하거나 풍자를 하거나 언어의 유희를 즐기는 지적인 시의 행위가 기본적인 이성이나 상식적인 판단의 기준을 벋어나서 문학적인 색체를 즐길 수는 있지만 奇想 (Metaphisical Conceits) 에서 지나치게 헤매는 일은 피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시행위는 자유로워야 하지만 그 한계와 객관적 가치를 저버릴 수는 없다. T S Elliot가 존경받고 주지파 시인으로 대표되는 것은 바로 이런 객관적 지적행위이기 때문일 것이다

3. 그러니까, 300여년전 영국문학에서 한획을 이룬 현이상학파 시가 '시하사' 시단에서 논하게 됬다. 이어서  임현아, 박향의 적은 논평을 통해서 그 두분의 시  '서럽게 울어도 봤다' '해바라기' 그리고 '은행나무' 를  발표하고, 이어 임현아의 존 던의 시 소개로 형이상학파 시를 즐기게 됬다. 존 던의 시 '고별사, 음흉한 애도' 를 두분이 번역하고 또 다른 번역자의 시를 소개해서 이를 음미하고 평하는 재미를 보게  됬다.

제한된 자료로서 존 던을 시사학적으로 보면 특출한 일탈이 보인다. 중세 영시를 전공하는
분께 결레가 될지 모르나, 이미 선언한데로 우리는 시 문학을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도 아니어서 학문적인 탐구나 시평은 그분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여기서 소개 한 존 던의 영시 원본과 번역시 는 시하사 일반계시판에 소개되어 있어 참고하시기 바람).

4. 현란한 시어 구사, 형이사학적 괴이한 은유, 에로틱한 연시 그리고 예리하고 풍자적인 종교시 등으로 형이사학파의 최초 시인으로 일커르게 되는 존 던은 천주교에서 개종하여, 영국정교의 사제가 되고 그유명한 강론으로 영국 왕도 미사드리는 런던의 요한 성당 주임신부로 임명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고 많은 시련으로 인해 사회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과정이 이런 시의 경향을 낳고 당시 시의 주류를 이룬 에리자베스 여왕시대의 부드럽고 잘 정리된 바로크풍에 시에 반하는 시를 쓰게 된다. 이러한 시 경향의 변화는 그후 여러곳에서 보여지는데 초현실주의 시의 브르톤, 그리고 보드레르, 주지시의 T S 엘리엇,  반시인 인 니카르노 빠라에 이르기 까지 많은 시학적 변천을 보게된다.

영국의 2대 문호 이며 영어사전을 최초로 정리한 사뮤엘 존슨은 존 던의 시를 최초의 형이사학적 시라고 이르고 높이 평가했다. 말년에는 많은 강론으로 더 유명해진 존 던은 이미 법관 과 하원의원을 지넸고 사회적인 관심을 얻기도 해다. 특히 그의 마지막 강론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음과의 결투- Death Duel' 에서 인간의 삶에서의 고난을 사랑으호 극복하고 구원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설파하고 몇일후 죽게되어 자신의 일생을 잘 표현했다고 일러진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존 스타인벅의 '종은 누구를 위하여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 제목은
존 던에서 빌려왔다. 영국 전통의 장래식에서 사람을 교회에 미리 보내서 종을 치게 했는데
존 던은 죽음에 이르는 모든이에게  '이 종소리는 너을 위해서 울리는 구원의 소리' 라고 했다. 그의 난해시는 재미도 있고 시형식으로 지적인 흥취를 풍기지만  이는 독자들에게 울리는 구원의종소리 처럼 들리기도 한다. 우리 시를 하는 시하사 시인들에게 죽음이란 무었인가를 생각케하고 존 던의 형이사학파 시가 좋은 교재와 귀감이 됬으면 한다.     

12/4/9, 분당 탄천변거에서, 다니엘 윤.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 인사말
                                  -슲음을 참으며- 
                                                      John Donne,  윤화진 역

여보게, 슬퍼하는 친구들이여
이 세상 조용히 하직하려
우리영혼에게 마지막으로 속삭이듯
숨을 몰아 쉬거던, 아니지
아직 떠날때가 아니라고 말해 주게나

죽음 앞에서는 차분히 조용해 주게
눈물이나 흥분된 탄식 따위는 거두게
내가 살어서 누린 진정한 사랑을
너무 애통해 해서  남에게 알려지면
신도 노하고 이런 낭패가 어디 있겠나

땅이 노하고 뒤 틀려서 햇고자 하거든
있는데로 받아주게
그러면 하늘은 멀리서 당황하지만 
우리의 순리데로  받아 줄 걸세 

영혼이 느끼는 사랑의 참 뜻을
못 알아 차리는 텅빈 세속의 연인들을
어찌 탓 하겠나

아무리 진정한 사랑으로 승화된 우리도
비록 그 사랑이란 것이 무었인지
깨닫지 못 하고, 다만 우리가
서로의 마음으로 엉키면
눈도 입술도 손이 없어도 대수겠나

그래서 우리 영혼이 하나 되어
내가  떠나드라도 
참지 못하지 아니하고
그 벌어진 틈세는 이별이 아니고
얇은 금박이 종이 처럼 늘려논
사랑의 연장일 뿐일세

역자주;
다음의 12 행은 연인들의 사랑의 행위를 그림 그리는 도구,
켐퍼스의  벌어진 두 다리에 은유해서 써내려 가는데 죽음에 이르는
고별사 치고는 다소 거리가 있고, 존 던이 무슨 연유로 이 객기를
부렸는지 의문이 갑니다. 형이상학적 은유의 奇談으로 훌륭하지만
더 풀어서 번역하면 음담이 될 듯하여 여기서 그만 줄이기로 하고
다음 기회에 그 뜻이 더 풀리면 마쳐 번역 하기로 하지요.





    아! 저 종소리 / 윤화진

      
    멍청한 바보에게
    구원의 멧세지 였네
    밀래의 그림 속의
    약속의 종소리를
    듣지 못했네
    그 감사의 기도가 무었인지도
    몰랐네 
    종이 누구를 위해서 왜 울리 는지
    알지 못했네
          잘란체 하던 바보, 바보였네
    조용한 명상속에 다시 깨어나니
    아! 저 종소리
    바로, 구원의 종소리 였네
     
             
                     
     

     봄
                  윤화진

 봄이 왔어요
    화려하게 또는 힘들게
       꽃을 피우다
           돌아 갈거에요
 봄은 늘 혼자 왔다가
       혼자 돌아가고 있어요
     시인은 봄처럼 혼자 지내요
             


주; 
   적은 말로 큰 뜻을 전하고 싶다.
   이 봄에, 진정으로 소박한 뜻을 전하고 싶다.
   시인이 되는 연습을 열심이 합니다.
   시는 곧 행위입니다

        부활의 기쁨
                             
                              - 부활절 음악회에서 낭송시-




                                   윤화진

구스타브 말러의 부활교향곡은
무거운 북소리로 시작했어요.
바로, 부활의 소리였어요.

오늘, 우리 작은 음악회
주님은 우리를 즐겁게 해주시려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오셔요

부서지는 무거운 북소리로
우리 모두 새롭게 태어나게 해 주세요 
주님 향해 이름 모를 벽을 허물고
우리 모두 새롭게 태여나야 해요.

부활의 기적은 믿음으로 이어지고 
기쁨과 슲음으로 살아온 세월
천국의 계단앞에 기쁨의 기도를 드려요
지금 서 있는 이자리 
주님의 은총으로 내리는 
새봄의 음악회를
부활의 기쁨으로  나누고 있어요,

부활의 약속은 영원히 기억되고
눈물로 기도를 드리고 있어요
부활교향곡 4 악장이 모두 끝날때 까지
감사의 기도를 기쁨으로  드리고 있을게요
부활의 기쁨은 영원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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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이외수의 비오는날 달맞이꽃에게

                                                       윤화진

이외수가 연예인 이상으로 메스콤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소박하고 간결한 문장력과 기인같은 외모는 독자나 일반인들의 시선을 끌기 충분하다. 그래서 그의 명성을 즐기고 광고모탤로서도 TV에 자주 등장한다. 여기서 광고주와 광고기획사의 상업적 천박성을 말하여 무었하랴!! 시인이 그렇게 팔려 다니는 예를 아작 알지 못한다. 시인의 시를 사 가야지 시인을 사 뻐리면 시가 나오지 않어요. 그는 원래 세상을 순박한 마음으로 노래하는 시인이다. 그의 시 하나를 여기서 자세히 들여다 보자.


비 오는 날 달맞이꽃에게
                                                이외수

이  세상 슬픈  작별들은 모두
저문 강에 흐르는 물소리가 되더라
머리 풀고 흐느끼는
갈대밭이 되더라

해체되는 시간 저편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시어들은
무상한 실삼나무 숲이되어 자라오르고
목매이던 노래도 지금쯤
젖은 체로 떠돌다 바다에 닿았으리

작별 끝에 비로소 알게 되더라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노래가 되지 않고
더러는  회색 하늘에 머물러서
울음이 되더라
범람하는 울음이 되더라
내 영혼을 허물더라



이 시는 그의 최근 출간한 글쓰기교본에서 시는 이렇게 쓰는 거라고 내 건 시모형이다. 어떤 주제를 가지고 감성을 불어넣어 쓰면 이런시가 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그 주제는 작별 또는 이별이다.
프로 시인다운 멋진 시다. 유려한 어휘, 능숙한 시적기교, 작별을 경험한 톡자에게 감흥을 주고
흐르는 듯 써내려간 이 시는 무어라 닷할 길이 없어 보인다. 스스로 성공한 작품으로 생각하느데 무어라 토를 달겠는가?

그런데 비오는날 그 소박한 달맞이꽃에 다가가 자신의 '쓰라린 작별'의 경험을 털어 놓고 위로를 받으려는 의도가 너무 바이론이나 괴테의 사랑의 시의 애송처럼 들리고 낫 간지럽다. 애뜻하거나 소박한 이외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 오지 안는다. 더우기 "무었 무었 하더라"의 가상적 강조의 객관적 관용구가 진정성을 흐리게 하고, 멋 모르고 듣고 있는 달맞이꽃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투다. '비오는날 어느 인순이에게'가 이 시의 제목으로 더 어울릴 것같다. 유려한 어구속에 숨어있는 전달 표현이 화려할수록 진정성이 떨어잔다.

이외수의  작별이 '영혼을 허물' 정도의 절실함이 있었다면 진솔한 직설법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아니면 Fiction이 내재되 있고 독자를 의식한 문학적 (또는 상업적?) 시를 시도 했다면 듣기 좋은 시가 되어, 시집도 팔리고 출판사도 좋아 할 것이고 물었을 나무랄 것인가?.

평자는 작년 노벨문학상 수상한 트랜스뢰뫼르의 시를 깊이 들려다 보고 평을 올렸는데 거기서 얻은 것이 '시란 적은 말로 큰 뜻을 전해야 한다. 그리고 진정성이 있어야 노벨문학상 반열에 드는구나'하고 시의 진수를 깨달었다. 이외수의 노벨문학상 도전을 그려본다.

위의 이외수 시를 행이나 절을 가지고 횡설수설해서 득될 것이 없겠다. 어느 비오는날 나도 달맞이꽃에 다가가 나의 작별의 경험을 털어 놓고 위로를 받어야겠다. 그러면 혹시 이외수 시의 평이 되거나, 한편으로 재미있는 비교문학이 될 것이다. 다만 끝으로 한 구절만 평을 한다면 2절 첫행의
'해체되는 시간저편으로' 는 달맞이꽃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말 실수다. 달맞이꽃이야 말로 해체된시간속에서 소박하게 '피어나고 또 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이글 쓴후 곧 바로 부활절 후의 엠마오 여행을 남해 작은 섬 사량도로 떠난다. 거기서 달맞이 꽃과 대화하고 돌아와사 그 시를 올려 보겠다.

사랑도에서 2박 3일을 보내고 돌아왔다. 시 쓰고 시 하는 것이 이렇게 고역이 될 줄은 모랐다.
아름다운 섬에서 '달맟이꽃'은 찾지 못하고 파도와 딩굴며 허덕이다 올아왔습니다. 시하사 카페 최신글 또는 일반계시판에 사량도에서 쓴 몇편의 시를 올려 놓습니다.







엠마오 여행에서

                                 윤화진

남해 작은섬 사량도 돈지 마을에
지리산을 바라보는 작은 산이 있는데 
지리망산이라 합니다.

지리망산 중턱, 등산객도 감히 다니지 못하는
험한 바위돌이 펼쳐 있는데 
그곳에 예수님이 서서 급히 떠나는 모습의
바위를 찾아 냈지요.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쿼 바디스 바위'라 스스로 이름 짖고 
정신없이 바라보다
엠마오의 축복으로 받아드려
여기 축시를 봉헌합니다.

" 주님, 어디를 그리 급히 가시나이까
  저들이 여기에 모시기가 부족하시옵니까
  저 세상 죄인들을 구원하려
  그리 급히 떠나야 합니까

  지금 머므신 지리망산 중턱은
  험한  바위 산이 옵니다.
  늘 떠나시는 길, 이제 산길을 돌아서
  편히 돌아 오소서
  우리의 죄가 곧 나으리다
  우리가 편안하리다'

                                                           2012/4/14일
                                                           지리망산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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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도                  
                                 -샤량도 바다가에서-

                                                   윤화진

파도는 잔잔히 스며드는 그리움이였네
때론, 철석이는 서러움 이였어
하얀물결 일구며  떠나는 이별이였네
사랑찾아 떠나가는 갈매기였어

그리움 서러움 바라보는 나그네였어
아! 저멀리 석양을 바라보는 시인이였네

시간은 그대로 지나 가는데
파도는  돌아오고  돌아가네
파도는 回生되어                         
돌아올 약속 하고
그리움 과 설어움의 시를 남기고
돌아 갑니다
              
파도는 새벽바다에서
혼자 서성대고 있어요
해뜨고 바람불면 돌아 가려고 
영겁의 숨소리 죽이며
回悟의 시를 남기며
돌아가고 있었요               

작별은 서러움만은 아니더라
저녁노을에 찾아든 잔잔한 파도 여
잠시라도 더 머물다 돌아가 주오
아쉬움 남기고  떠나 간다더면
별빛같은 눈물 바치오리다                    

깊고 푸른 바다속
오색물고기의 춤사위는
물방로 함게 뭉쳐 파도가 되어
별따라 바람따라
머나 먼 고향길 찾아들어
휘몰아친 바람으로 바위에 부딧쳐
찬란하게 부서진 사랑의 꿈
파도는 합창하는 비극이 였네                   

파도여, 어찌 그리 급히 떠나려 하오
지금, 그리 떠나려 해도 보내드릴 수 없소
나는 발버둥치다 쓰러졌다오
내 서러움 모두 삼킬때 까지
흐터진 내 영혼 모두 주어 담을때까지
잠시만 더 머물어 주오
파도여, 당신이 떠나려해도
보내 줄 수 없어요
어찌 그리 급히 떠나려 하오
                    
파도여!
그대 떠난다 해도
그대로는 못보내 드려요
하늘의 별을 따서 돌아 온다해도
보내드리지 못하오
기시는 길 어찌 그리 서두르시오

적은 아쉬움이라도 더 남기고
잠시라도 더 쉬었다 가시구려
그려면 보내는 이 마음 꽃잎되어
하늘로 날으리다
멀리 떠나는 바다를 내다 보며
눈물지며 그리워 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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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성의 퇴화

                      윤화진



다른 것들은 그런데로 진화하는데
구지, 꺽구로 가는 것이 있다
뱀의 다리처럼 퇴화하며 진화하는가?

많은 사람을 위헤서 봉사/정치 하겠다는 사람들
그들의 사람 됨됨이-인간성이 믿기지 않는다
아무리 봐도
자기 자식 며누리 사위만 챙기는 사람으로 보인다

교회를 들먹이고 나라를 들먹이는 분들
한자리 한다며 우루루 몰려든다
너 나 없이 쉽게 한 건 하려고 쑥덕인다

사뮤엘 존슨은 일직이
애국은 말문이 막히면
들쳐대는 비겁한 자의 도피처라 했던가
신앙이란 것도 비슷히다
평소에 무관심 하다가 
혹시 이익이라도 생기면 애국 애국,
하느님 하느님 하면서
무식을 절절 흘리며 거픔을 문다

인간성이 퇴화해 간다
사회 전체가 부도덕하게 그리로 쏠리고 있다

지도자들에게는 더 심하게
매를 들어야 해요

예를 들 필요가 있나?
마르코스 카다피 닉슨 
우리는?  
다 잘 알고 계시지요

우연이라고 넘기기에는 죄 값의 계산이
너무나 확실해요, 살아서 죽기전에 심판 받었어요 

신성에는 접근하지 못 하지만
인간성 회복을 해 나가야해요

우리 힘만으로는 잘 안되요
어쩔 수 없이 기도에 기대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