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23일 월요일


    형이상학파 시를 논하다

                                                  윤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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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고 벼르다 리에 쥐가 나는 작업 (Brain-Twitsting)을 또 해야하나 보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형이사학이란 단어를 무척 싫어 했다. 요지음 일상의 권태를 느끼지는 않지만 피로를 느낀다. 보들레르는 일상의 삶에서의 권태를 죄악시 했다. 권태는 나태를 낳고 시대를 침체시킨다. 더우기 '타락한 나태의 무식한 주장'은 그 사회적 피해가 막심하다. 성공을 갈망하는 모두의 삶이 이루지 못한 욕망때문에 피로를 느끼고 좌절케 하는 시대를 어찌 피해 갈 수 있겠는가?

우리 모두 엄청나게 들고 뛰는 듯 해도 '피로의 시대' (The Age of Fatigue) 에 살고 있다. 더우기 싫어 하는 개념이나 단어를 가지고 씨름을 하려하니 자연히 주춤거리게 된다. 형이상학파의 시는 17세기 하나의 변화하는 시학적 경향으로 보여진다. 이 변화는 사회적 예술적 좌절에 대한 도전일 수 있다, 어떻한 이야기인지 알어 보자.

1.  우연히 아무런 감흥도 관심도 없이 TV를 보다가 뒷머리를 탁 때리는 어느 광고문 하나를 보았다.'변화가 진리이다' 멍청한 말장난으로 치부하기에는 버거운 내용이었다. 진리는 영원한 것으로 받아드렸는데 이 웬 변화 자체를 진리라고 하면 사고의 질서에 큰 변혁이 아닐 수 없다.

형이상학이 觀念論과 쾨를 같이 한다면, 思索은  정태적(靜態的- Static)이고 관념은 뭄직이는 생각, 動態的 (Dynamic)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뒤척이다보면  이미 하나의 가지에서 수십 수백의 가지를 낳는다.. 그래서 '나는생각한다,고로 존제한다'는 관념적 인식으로 까지 이르게 된다. 

다시말해서 형이샹학적 시의 출연은 바로 변화하는 변화를 먹고 자랄 수 밖에 없었다. 하나의 생각, 즉 동적인 관념이 수억에 달하는 뇌 세포(DNA)를 통해서 '생각의 유희' 또는 ' 지적 풍자' '奇想-Conciet' 으로 까지 화학적 변이를 이루어 시를 만들어내고 창조적 직관 ( Creative Intution) 도 이끌어 내서 예술적 창조가 이루어 진다. 따라서 '변화가 진리'일 수 있다는 명제가 성립된다. 이런 논리적인 일탈이 있다면 이는 창조를 향한 같은 맥락의  Brain-Twisting ( 머리에 쥐나기 ?) 덕분이아닌가 생각 한다.

논고의 중심인 영국 16세기 말 17세기 초반으로 돌아가면 이런 관념변환의 돌풍속에 휘말린 존 던
( John Donne)을 형이상학적 시학의 창시자로 만들어 낸다. 그가 섹스피아를 비롯한 많은 시인들이 활동한 엘리자벳시안 시대 사람으로 보아 유럽대륙의 바록크 ( Baroque)문화 영향권아래  번창하는 영국 시문학에서 벋어나려 했다.

2. 시대적 변화의 경향과 더불어 시, 그림, 음악도 변화의 흐름을 타고 바뀌고 바뀌어 오늘에 이르러 우리는 이런 '변화의 진리'의 틀속에서 그변화가 가져온 결과를 자유롭게 즐기고 있다. 시, 그림 그리고 음악의 변천사를 간략하게 나마 소개한는 것도 형이상학 시를 논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그 범위가 방대하므로 여기서는 피하고, 다만 지나친 종교적 속박속에서 자란 찬미적 예술, 성시, 성화, 고전음악에서 벋어나서 르네상스를 거치는 낭만주의, 그리고 여기서 탈피하려는 표헌주의, 초현실주의 심지어 Post Modernism 에 이르기 까지, '변화'는 그 흐름의 중심추가 됬던 것이다. 변화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다. 어찌 변화가 진리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형이상학적 시는 바로 이런 낭만주의 색체를 벋어나는 하나의 변화였다.

여기서 인간의 인식 수준의 변화를 미술사적인 관점에 드려다 볼 필요가 있겠다. 인간이 아직 미개해서 수천년전에 동굴에서 수렵을 하고 살던 시대가 있었다. 인간의 최초의 그림이라고 하는 그림이 이 동굴 벽에서 발견됬는데, 이들은 이 그림과 실제 동물과 구별을 하지 못 했다고 미술사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신화속에 환상이나 환영은 이런 낮은  인식수준에서 아직 사물과 환상을 구별하지 못한데서 비롯됬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성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환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궁금하다. 지금도 간혹 다소 어리둥절해서 '혼'을 또는 정신을 놓으면 이런 착각이 일어나고 이런 환각작용에 익숙하면 점쟁이나 예언가를 낳게된다. 신비적 Mystics 이나 종교적 困或에 빠저있는 종교인을 흔히 본다. 여기에 이르면 이는 인식을 제대로 못한 幼致에 빠진거나 다름없다.

이런 이야기를 왜 여기서 하느냐 하면 관념론적인 시를 하거나 풍자를 하거나 언어의 유희를 즐기는 지적인 시의 행위가 기본적인 이성이나 상식적인 판단의 기준을 벋어나서 문학적인 색체를 즐길 수는 있지만 奇想 (Metaphisical Conceits) 에서 지나치게 헤매는 일은 피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시행위는 자유로워야 하지만 그 한계와 객관적 가치를 저버릴 수는 없다. T S Elliot가 존경받고 주지파 시인으로 대표되는 것은 바로 이런 객관적 지적행위이기 때문일 것이다

3. 그러니까, 300여년전 영국문학에서 한획을 이룬 현이상학파 시가 '시하사' 시단에서 논하게 됬다. 이어서  임현아, 박향의 적은 논평을 통해서 그 두분의 시  '서럽게 울어도 봤다' '해바라기' 그리고 '은행나무' 를  발표하고, 이어 임현아의 존 던의 시 소개로 형이상학파 시를 즐기게 됬다. 존 던의 시 '고별사, 음흉한 애도' 를 두분이 번역하고 또 다른 번역자의 시를 소개해서 이를 음미하고 평하는 재미를 보게  됬다.

제한된 자료로서 존 던을 시사학적으로 보면 특출한 일탈이 보인다. 중세 영시를 전공하는
분께 결레가 될지 모르나, 이미 선언한데로 우리는 시 문학을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도 아니어서 학문적인 탐구나 시평은 그분들의 몫으로 남겨둔다. (여기서 소개 한 존 던의 영시 원본과 번역시 는 시하사 일반계시판에 소개되어 있어 참고하시기 바람).

4. 현란한 시어 구사, 형이사학적 괴이한 은유, 에로틱한 연시 그리고 예리하고 풍자적인 종교시 등으로 형이사학파의 최초 시인으로 일커르게 되는 존 던은 천주교에서 개종하여, 영국정교의 사제가 되고 그유명한 강론으로 영국 왕도 미사드리는 런던의 요한 성당 주임신부로 임명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고 많은 시련으로 인해 사회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과정이 이런 시의 경향을 낳고 당시 시의 주류를 이룬 에리자베스 여왕시대의 부드럽고 잘 정리된 바로크풍에 시에 반하는 시를 쓰게 된다. 이러한 시 경향의 변화는 그후 여러곳에서 보여지는데 초현실주의 시의 브르톤, 그리고 보드레르, 주지시의 T S 엘리엇,  반시인 인 니카르노 빠라에 이르기 까지 많은 시학적 변천을 보게된다.

영국의 2대 문호 이며 영어사전을 최초로 정리한 사뮤엘 존슨은 존 던의 시를 최초의 형이사학적 시라고 이르고 높이 평가했다. 말년에는 많은 강론으로 더 유명해진 존 던은 이미 법관 과 하원의원을 지넸고 사회적인 관심을 얻기도 해다. 특히 그의 마지막 강론이라고 할 수 있는 '죽음과의 결투- Death Duel' 에서 인간의 삶에서의 고난을 사랑으호 극복하고 구원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설파하고 몇일후 죽게되어 자신의 일생을 잘 표현했다고 일러진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존 스타인벅의 '종은 누구를 위하여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 제목은
존 던에서 빌려왔다. 영국 전통의 장래식에서 사람을 교회에 미리 보내서 종을 치게 했는데
존 던은 죽음에 이르는 모든이에게  '이 종소리는 너을 위해서 울리는 구원의 소리' 라고 했다. 그의 난해시는 재미도 있고 시형식으로 지적인 흥취를 풍기지만  이는 독자들에게 울리는 구원의종소리 처럼 들리기도 한다. 우리 시를 하는 시하사 시인들에게 죽음이란 무었인가를 생각케하고 존 던의 형이사학파 시가 좋은 교재와 귀감이 됬으면 한다.     

12/4/9, 분당 탄천변거에서, 다니엘 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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