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23일 월요일


     詩에 관한 小考
                                - '시하는 사람들' 모임을 중심으로-
                                                               윤화진
시의 정의를 내리거나 종류를 이야기 하는 것은 재미 없는 일이다.
시문학 강의실에 들어가서도 이부문은 인기 없는 대목이다.
그런데 어느날 시 이야기를 좀 끄내려하면 모두 쑥스러워하고 그건
여학생들이나 어쩌다가 하는 이야기 아니냐며, 많은 사람들이 시를
좋아 하기는 하는데 잘 모른다고 한다.
시를 읽는데, 편지, 신문, 교과서, 수필, 논문 읽드시 내용을 알려하면
앞뒤가 안 맏거나 내용을 파악하기가 쉽지않다. 그래서 시는
말씀 언 (言) 변에 절 사 (寺)자를 부쳐서 詩라 부른다. 이렇게 시를 정의 내리는
분이나 학자도 있다. 분명히 시장 바닥에서 하는 말은 않인 것 같다.

절이나 혹은 교회와 서당이나 정자 같은데 뫃여 이야기를 한다면 다분히
감성적 정서적인 내용이거나 형이상학 또는 관념적인 표현이 많을 것이다.
시는 '알려고 또는 알리려 하기' 보다 '느끼거나 느낌을 전하려 한다' 고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겠다.
시를 배우거나 써보려는 사람은 기초적인 그 내용을 위에서 말한데로 익히고
시험해 볼만하다. 그러나 자신이 느낌을  배우거나 가르처주면 이는 이미
시가 아니고 지식, 이론 또는 주장이 된다.
인간에게는 진선미 (眞善美)에대한 감각이 있고 느낌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에
대한 창조적 직관- Creative Intuition-을 타고나거나 연마해서 이를
'자기언어'표현하면 이는 시가 될 수 있는 소지가 많다. 그래서 시인은
훈련되거나 연마해서 만들어지기 보다는 태어난다고도 한다. 이제까지 태어난
최고의 수필가 몬테뉴는 아무리 시를 쓰려해도 안 되드라고 고백할 정도 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시인은 예수 석가 공자가 아닌가 합니다.가르침이나 진리의
말씀은 자주 은유로 가장 아름답게 잘 전달됬으니까요. 그 말씀의 예를 들 필요도
없이 우리에게 너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 '시하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그리고 시를 암송하며 즐기는 모임이 있는데
남의 시 또는 자작시를 느끼고 즐기고 자신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있습니다. 

시를 쓰고 창작을 하는 것도 좋지만 " 시를 즐기고 행하는 행위 '시하사'의 조촐한
모임을 즐기고 있는 우리들은  오늘날 시가 크게 대접 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높이 평가
되야한다고 믿고 있다.
'고급 감흥'을 주변에서 쉽게 살 수 없을 것이다. 찾으면 저질스런 쾌락 또는 너절한
오락은 주위에 얼마던지 있다. 무감각은 권태스런 삶의 속성이다. 그래서 감성 보다 
신앙에 몰두하게 된다. 좋은 일이지요. 다소 어려운 표현이가는 하지만 시하사는
처음부터 '시적영성생활-Poetic Spritual Life'를 주창해 왔습니다.
시는 결코 먼데 있지 않고 우리 곁에서 우리를 줄겁게 해주고 '믿음의 성숙성'
( Matured Spirituality)을 이루어 낸다. 치장하고 성경책들고 교회에 그냥 다니는 것만은
아니고 신앙의 깊이를 시를 통해서 더 성숙시길 수 있습니다.

요지음 우리 '시하사' 낭송회는 어느 음악회 연극 공연장이나 유행하는 연예 프로그램
 또는 성경강좌에  다녀온 것 보다 더 흡족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회원 모습이 너무나 좋습니다.
'시하사' 는 한달에 한번은 마음의 껍질을 벗어 던지고 새로운 삶의 활력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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