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23일 월요일


시평- 이외수의 비오는날 달맞이꽃에게

                                                       윤화진

이외수가 연예인 이상으로 메스콤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소박하고 간결한 문장력과 기인같은 외모는 독자나 일반인들의 시선을 끌기 충분하다. 그래서 그의 명성을 즐기고 광고모탤로서도 TV에 자주 등장한다. 여기서 광고주와 광고기획사의 상업적 천박성을 말하여 무었하랴!! 시인이 그렇게 팔려 다니는 예를 아작 알지 못한다. 시인의 시를 사 가야지 시인을 사 뻐리면 시가 나오지 않어요. 그는 원래 세상을 순박한 마음으로 노래하는 시인이다. 그의 시 하나를 여기서 자세히 들여다 보자.


비 오는 날 달맞이꽃에게
                                                이외수

이  세상 슬픈  작별들은 모두
저문 강에 흐르는 물소리가 되더라
머리 풀고 흐느끼는
갈대밭이 되더라

해체되는 시간 저편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시어들은
무상한 실삼나무 숲이되어 자라오르고
목매이던 노래도 지금쯤
젖은 체로 떠돌다 바다에 닿았으리

작별 끝에 비로소 알게 되더라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노래가 되지 않고
더러는  회색 하늘에 머물러서
울음이 되더라
범람하는 울음이 되더라
내 영혼을 허물더라



이 시는 그의 최근 출간한 글쓰기교본에서 시는 이렇게 쓰는 거라고 내 건 시모형이다. 어떤 주제를 가지고 감성을 불어넣어 쓰면 이런시가 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그 주제는 작별 또는 이별이다.
프로 시인다운 멋진 시다. 유려한 어휘, 능숙한 시적기교, 작별을 경험한 톡자에게 감흥을 주고
흐르는 듯 써내려간 이 시는 무어라 닷할 길이 없어 보인다. 스스로 성공한 작품으로 생각하느데 무어라 토를 달겠는가?

그런데 비오는날 그 소박한 달맞이꽃에 다가가 자신의 '쓰라린 작별'의 경험을 털어 놓고 위로를 받으려는 의도가 너무 바이론이나 괴테의 사랑의 시의 애송처럼 들리고 낫 간지럽다. 애뜻하거나 소박한 이외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 오지 안는다. 더우기 "무었 무었 하더라"의 가상적 강조의 객관적 관용구가 진정성을 흐리게 하고, 멋 모르고 듣고 있는 달맞이꽃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투다. '비오는날 어느 인순이에게'가 이 시의 제목으로 더 어울릴 것같다. 유려한 어구속에 숨어있는 전달 표현이 화려할수록 진정성이 떨어잔다.

이외수의  작별이 '영혼을 허물' 정도의 절실함이 있었다면 진솔한 직설법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아니면 Fiction이 내재되 있고 독자를 의식한 문학적 (또는 상업적?) 시를 시도 했다면 듣기 좋은 시가 되어, 시집도 팔리고 출판사도 좋아 할 것이고 물었을 나무랄 것인가?.

평자는 작년 노벨문학상 수상한 트랜스뢰뫼르의 시를 깊이 들려다 보고 평을 올렸는데 거기서 얻은 것이 '시란 적은 말로 큰 뜻을 전해야 한다. 그리고 진정성이 있어야 노벨문학상 반열에 드는구나'하고 시의 진수를 깨달었다. 이외수의 노벨문학상 도전을 그려본다.

위의 이외수 시를 행이나 절을 가지고 횡설수설해서 득될 것이 없겠다. 어느 비오는날 나도 달맞이꽃에 다가가 나의 작별의 경험을 털어 놓고 위로를 받어야겠다. 그러면 혹시 이외수 시의 평이 되거나, 한편으로 재미있는 비교문학이 될 것이다. 다만 끝으로 한 구절만 평을 한다면 2절 첫행의
'해체되는 시간저편으로' 는 달맞이꽃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말 실수다. 달맞이꽃이야 말로 해체된시간속에서 소박하게 '피어나고 또 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이글 쓴후 곧 바로 부활절 후의 엠마오 여행을 남해 작은 섬 사량도로 떠난다. 거기서 달맞이 꽃과 대화하고 돌아와사 그 시를 올려 보겠다.

사랑도에서 2박 3일을 보내고 돌아왔다. 시 쓰고 시 하는 것이 이렇게 고역이 될 줄은 모랐다.
아름다운 섬에서 '달맟이꽃'은 찾지 못하고 파도와 딩굴며 허덕이다 올아왔습니다. 시하사 카페 최신글 또는 일반계시판에 사량도에서 쓴 몇편의 시를 올려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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