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31일 화요일

나의 엑소더스 4 / 다시 이집트 로





                                                                                             윤화진

지금의 과천의 어는 작은 마을에서
일직 출발해서 노량진 근처 한강 가에 도착했다.
나의 이 마지막 도강은 어머니와 셋여동생과 함게
정말 죽기 살기의 결판이였다.

이미 여러 곳에서 중공군이 무리지어
한강을 건너가고 건너오고 있었다.
도강 자체의 위험보다 도강중에
혹시 있을 비행기의 기총소사 공격이다.
허허 벌판에 놓인 위 아래의 위험이다.

나는 그때 기도라는 것을 몰랐다.
나는 아니 우리는 그러한 처참한 위험에는
빠지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고
이제 까지 살어 오면서 알지 못 할
그런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어린 여동생 셋과 어머니와 서울 귀환의 도강을 마쳤다.
나는 지금도 행운과 기적으로 믿고 있다.

집으로 향해 무서운 속도로 걸어
할아버지 할머니와 무사히 맏나던 장면은
지금 기억이 흐미하다.
기뻐서 얼사 안고 울고 불고 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오히려 어덯게 살어 갈 것인가가 더 머리를 조여 오는 것이였다.

여섯칸 대청마루, 아짜문의 방 문짝이
덩그러한 큰 한옥의 집으로 돌아 왔으나
먹을 것과 뗄 것이 없었다.
지금도 이상한 것은 두번의 북한 지배하의 생활을
경험했는데 갑자기 주변의 먹을 것들이 사라지고
飢饉이 시작되는 것이다.

위기를 알아 차리고 먹을 곡식을 숨기기 시작하고
먹거리가 시장에서 사라지는 현상이다.
지금의 식량부족의 북한 실정를 보는 듯하다.
하루 하루가 먹고 사는 일의 걱정 뿐이다.
나의 여섯 식구 먹고 사는 생존 전략은
먼저 도강작전의 무용담 처럼 다시 시작됬다.

지금 아현동 고개를 지나 신촌으로
넘어가는 고개길에 시장이 서고 있었다.
옷가지 먹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길거리에 널려 장사가 이루어 지고 있었다.
신기하게 통용되는 화페는 남한의
이승만 대통령 사진이 있는 화페였다.
북한 화페는 기피하는 통화였다.
나는 시장바닥 아래 위를 돌아보고
신기한 것을 발견했다.  9.28 서울 수복때
미군 부대가 주둔하던 곳에서 남아 돌아가던
소위 C 래이숀 깡통음식, 미국 담배,
드롭프스 라는 사탕과자, 심지어 쵸코랫 등이 사고 팔리고 있었다.
상당한 량의 지하경제 활동이  벌어 지고 있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많은 미제 물건이 거래되고 있었는데 나의 중학교
2학년의 영어실력이 위력을 발위헤서 내용물들을 알려주고 번역을 해서
내용물에 따라 가격을 정해주고
나는 이를 떠 싸게 유리하게 사고 팔수가 있었다.
깡통속의 함버거, 콘비푸, 닭고기, 베이콘등은  인기가 있어
다른 채소 콩 등에 비해 몇배를 받고 팔 수가 있었다.

양 담배 럭키스트라이크는  카멜, 체스타필드는
필립모리스 보다비싸게 잘 팔렸다. 
쥐고리 만한 영어실력으로 장사가 잘 되고 소위 지하경제의
스타 프레이어가 되어 있었다.

이장사로 식구들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적지않이 돈이 벌였다. 신기했다.
할아버지는 나에게 장사 자본을 넉넉히 대주셨다.
장사가 잘되니 모두가 부러워하는 팔목시계도 사서 찰 수있었다.
나의 영어실력이 생존수단이였다.

소위 미제 '야미시장'의 지하경제는 왕성하게 번창했다.
하루는 시장에서 책상만한 좌판을 펴고 있는데
한 중년 아줌마가 다가와 따라 오라는 것이다.
미제 물건 구입은 이렇게 이루어진다.
무었이 있느냐고 물으니 무조건 따라오라는 것이 였다.
지금 생각하니 서대문 고급주책지로
남측의 전 장관 지내던 사람 집이다. 안으로 드러오라고 해서
잔득 겁을 먹고 방으로 들어가니 서울말을 쓰는 군복차림
중좌 (중령) 계급의 장교가 웃으면 나를 맞는다.
마음이 놓이고 나를 해코자 하는 분위기는 아니였다.

미제 물건 장사를 하는냐고 묻길래 식구하고 먹고 살려고
장사하고 있다고 했더니 이야기들어서 알고 있는데
양담배하고 미제 몇가지를 가지고 오면 쌀하고 바꾸어 주겠다는 제안이다.
소위 우리가 아는 군대와의 부정거래의 전형이다.
나는 힌 쌀밥이 머리에 떠오르고 전쟁중의 큰 횡제를 마다 할 여지가 없었다.
즉시 시장으로 돌아와 구할 수 있는 시장바닥의 모든 담배를 뫃으니
1 보루 (10갑)쯤 됬다. 내가 등에 질 수 있는만큼 힌 쌀을 받아 어깨에 미고 집으로
돌아와 그날 저녁 꿈에도 그리던 힌 쌀밥을 지어먹었다.

온 가족도 힌 쌀밥의 감동의 시간을 즐겼고, 신이난  나는 장사의 노하우를
더욱 높혀갇다. 나의 셋 여동생은 지금 모두 살아있고, 이집트로 끌려간 간혹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성공담 비슷한 이야기가 됬다.

'나의 엑소더스' 이야기는 어려움속에서 삶의 노하우를 익힌 기술로
행운의 미국 예일대학 유학으로 까지 이어지고 지금도 영어 잘 한다는 말을
듣고 여기까지 살아오고 있다. 도리켜 생각해 보면 하느님의 은총이 아닐 수 없다.

내가 경험한 더 비참한 전쟁이야기는 '나의 엑소더스' 후편으로 더 써 나가고 싶다. .









2012년 1월 27일 금요일

나의 엑소더스 3 / 제 3차 渡江記



                                                              

                                                   윤화진

평생 힌 한 한복만 잘 달여 입으시는
할아버지께서 집으로 돌아 오셨다.
늘 무표정이신 분이 좀 얼굴이 상기 되어 있었다.
내가 집으로 돌아온 사실보다
더 심각한  사건이 벌어 진 모양이다.

서너집 건너 내 중학교 한반 친구 순택이 아버지도
그 식구들이 집에 혼자 두고 떠난 케이스였는데 
방에서 혼자 얼어 죽은 것이였다. 동내 남은 몇분이 오늘
그 시체를 방에서 거두어 묻어 주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이 집으로 돌아온 나를 보고 마음이
더 착찹하여진  할아버지 심경을 이해 할 것같았다.

이제 까지 할아버지와 밥상을 함게 한 적이 없었는데
이 날 저녁은 할머니께서 정성드려 할아버지와
합상을 차려 주시고 집안에서 나의 격이 한 단계 높아 졌다.
집안의 가장의 위치는 절대적인 것이 였다.

아침 일직 이러나 제 3의 도강 준비를 하며 곧 어머니와 동생들을
대리고 오겠다는 인사를 드리고 가볍게 집을 나선다.

지금, 아직 중학교 2년생인 미성년이고 아무리 전쟁중 이지만 자칫 목숨을
건 얼음판의 한강 3차 도강은 지금생각해도 엄청난 무용담이 아닐 수 없다.
지금 감남 과천에 두고 온 어머니와 여동생 셋을 데려 오려는 마음에는 하나도
흔들림이 없었지만 그 이면에는 무서운 정치적 핍박의 스켄달이 깔려 있었다.

나의 도강작전의 수개월전 인민군의 서울 점령시 남으로 피난하지 못한
소위 잔류파는 도강파들의 귀환으로 무참히 처형되거나 부역했다는 억울한
누명으로 괴롭힘을 당한는 것을 나는 어린눈으로 목격했다.

또한 서울을 텅 비워놓는 군사작전 말고도 사상적인 심리전 같은 것이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전쟁사를 어덯게 해석할런지
후세에 기록되겠지만 이는 죄없는 사람들이 격은 금세기 가장 더러운 정치적
스겐달의 하나로 기록 되야한다.

이런 정치적 사상적인 이유로 피해를 받지 않으려는 공포감이 나의 3차 4차
도강을 감행하게 한 것이다. 이러한 서울 탈출기에는
기록되지 않고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비극들이 어린 나의 눈에 남아있다.

우리의 모세는 없었다.
행복의 약속, 기도, 하늘의 축복, 십계명, 예언자의 계시도 없었다.
시련과 고난 뿐이였다. 현대판 출애급기 이다.

길가에 버리고 간 포대기에 쌓인 간난아이들,  골모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서둘러 피해가고 서로 뒤 돌아보며 측은해서 바라보는 눈길,
서로 잘 아는 동내 어른이나 젊이는 동사무실등에  불려가 시퍼렇케 멍들도록 얻어 맏고
돌아 오는 일은 다반사였다.

아직도 이해안되는 것이 서로 잘아는 사람들이 서로
때리고 패는 행패를 서로 할수 있었다는 것이다. 소위 엉터리 이념갈등이란 것이
작은 동래에서 서로 형제처럼 오손 도손 지내던 인정이나 소속감을
송두리째 아서 갇다.

나는 무사히 그날 오후에 어머니와 동생들을 두고 온 과천의 작은 마을에 도착하여
서둘러 서울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끌고 간 손수래등을 모구 버리고 작은 꾸래미들을
만들어 어린동생들의 등에 미게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4차 도강에 나셨다.
그 손수래의 추억, 지금 어른들이 끌기에도 어러운 무게의 수래를 밀고
가파른 관악산 고개를 어덯게 넘었는 가는 아직도 상상이 되지 않는다.

모세가 시나이 산에 오르는 고난의 버금가는 장면이리라.
나는 60년후 성지순래에서 그 시나이 산 앞에 까지 가서도
나의 피난의 기억이 떠 올라 산에 오르기를 포기했다.



2012년 1월 24일 화요일

나의 엑소더스 2 / 때 늦은 탈출기



                                        
                           
       
                                                                                                                 
홍해를 건너온 기적 처럼 도착한 곳은
지금의 흙석동, 과천으로 넘어가느 골목이였다.
큰길은 군 부대 후퇴로 모두 막히고, 피난민은
모세가 지나간 시나이 산이 아니라 
관악산이 앞을 가로 막고 서 있었다.
나는 지금도 관악산을 좋게 안 본다.

소풍이라도 떠나온 듯 어린 여동생 셋은
영문모르고 잘 따라 나섰다. 평생 외출을
모르시던 어머니는 큰 홍역을 치르시고 계셨고
나는 소풍길에 들어선 반장처럼 소수래를
열심이 끌고 신나 있었다.

갑자기 술렁이는 피난행열은 입소문으로
이미 중공군이 우리를 지나가서 수원을
점령했는 소식이다. 더 믿고 나갈 가나안 땅은
없어진 것 이다. 그런데 우리를 덥친 것은
따라온 이집트 군이 아니라 하늘을 나르는
쌕쌕이 미군 비행기였다. 중공군이 우리에게
석이지도 않았는데 우리를 마구 쏘아댄다.
나는 그 조정사가 그렇게 똑똑하고 영악한지
처음 알었다. 실로 구사일생 이다. 더우기
고마운 것은 우리는 아무도 다치지도 않았다.
할머니께서 늘 왜우시던 '관세움보살' 덕분인 것 같다.

이제 방향설정을 위한 전략회의다. 참모장 격인
나는 되 돌아 간다는 결론을 내렸다.
부대원을 모두 놓아두고 서울 정찰에 혼자 나섰다

천신만고 끝에 건너온 얼어 붙은 한강을 다시 넘는 일이다.
이번에는 앞사람을 따라갈 줄도 없다.먼저 건너 올 때보다
얼음이 더 녹아서 발길이 더 질척인다.
그래도 몇사람이 뭉쳐서 의지하고 건너서 겨우 끼어 들었다.
얼은 강 중간쯤 여기저기서 외마디 소리가 들린다.
나는 한발 한발 내 딛는 일에만 집중했다.
무사히 강가에 닫았다. 지금의 용산 나루터 어디쯤이다.

이제 척후병은 날개를 달었다. 지금 숙대와 효창공원을
가로 질러 만리동 고개를 넘어 서대문 집으로 일사철리로
내 달렸다. 감나무꼴 산등성이에서
집의 지붕이 보인다. 한숨을 돌렸다.

대문을 밀어 졌치고 집안으로 들어 선다. 할머니께서 놀래며
맞아 주신다. 어쩐일로 혼자 돌아 왔냐고 놀래시며 묻는다.
대답대신 할아버지께서 안 보이시어 여쭈었더니 건너방을
가리키며 돌아 가셔서 그방에 모셨다고 하신다

가슴이 무너지는 듯 하여 정신없이 대청마루를 건너
방문을 열어 졋쳤는데 빈 방이 였다.

할머니께서 나를 보고 우스시며 놀리신 것이 였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60념후 지금 까지
할머니의 유머어는 잊어지지 않는다.
그런 절박한 순간에 그런 농담을 하실 수 있다니 말이다.

죽으라고 그냥 두고 떠난 어린 손자가 막막하게 살 길이 없으신
처지에 서운하셨던 모양이다. 살어 돌아온 어린 손자에 대한
농담은 할머니의 손자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
고래장 치르고 떠난 손자가 돌아 온 것이였다.



나의 엑소더스 / 천국은 모두 함게 있는 곳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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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화진

그해, 서울을 탈출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느님의 자비로
한강 물을 얼려 주셨다.
홍해을 갈러 놓은 모세의 기적 보다
더 큰 은총이었다

일열로 서서 생사를 걸고
강을 건넌다. 강물은 좀 녹아서
질척이며 신발의 반은 적신다

국민학교도 졸업 못한 여동생 셋 과
어머니, 나는 중학교 2 학년
가족의 모든 책임을 질머 졌다.

함께 떠날수 없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서대문 집에 두고 떠난다.
추운 겨울
마치 고래장을 지낸 기분이였다

연극이나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고
실제로 작난이 아니였다.

60년 후 지금 이 사진 한장으로 그 생생한 그때
모습을 기억해낸다. 젖과 꿀이 흐르는
나의 가나안 땅은 아직 멀고도 멀었다

돌아가신  할머니 말씀이 
'너 참 장하다. 우리 모두를 살렸어
젖과 꿀이 없어도 여기 함게 살고, 함게
죽을 생각을 하니 여기가 가나안 땅이고
천국이 아니 겠니 ? '

나는 이제 천국의 의미를 알아 차린다.
지옥은 서로 떨어저 있는 곳이다.

나의 약속의 땅 천국으로 향하는 엑소더스는
이제 막 시작이다.

2012년 1월 22일 일요일

형의 죽음

                                          윤화진
Image Detail
                                        
멀리 뉴욕에서 부음이 날아 들었다
친구 처럼 지내고 중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한살위 사촌 형의 죽음이다
불우한 생애를 외롭게 지내던터라
놀랍지는 않았고 발인전에 부의금를
보내는 일이 큰 일로 남었다.
죽어서도 어쩔 수 없는 돈 이야기다

요지음 태어나고 죽는 것이 하나의
멋있는 이벤트로,  특히 죽음은
힌 국화 한송이 받아 주는 시적인 사건으로
두럽지도 괴로울 것 없는 해푼잉일 뿐이다.
한편의 드라마가 막을 내리는
명 장면으로 받아 드렸으면 한다..

누구나 주어진 무대위의 배우였을 뿐,
객석의 관객일 수는 없다
박수 소리 라도 들렸으면 한다.

형의 명복을 박수 소리와 함게 빌어야겠다.

경쟁 포기





                                 윤화진
                                                                                                    
나는 경쟁을  포기한다                                                       
유치원 입학부터 대학입학 대기업 입사까지
경쟁을  빼 놓고 산 시간이 없었다
고난의 행군이다
남보다 좀더 Good 어야 하고 이겨야만 했다
성경 어느 구절에도 이런 말씀은 기억이 않나느데
목사나 신부님은 이문제 해결에 도음이 안된다.
입시 특별기도회를 연다. 부모님들이야 고맙지요

아무래도 경쟁의 구도에서 세상을 좁게 보고있다
경쟁은 생활의 기본이다. 이를 포기하면 끝이다.

그래서 경쟁에서 이긴 훌륭한 교회의 훌륭한 목사와
신부님들은  거드럭 거린다. 한 번도 신자를 어린 양으로
보는 분을 보지 못. 했다.  으스데고 겸손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불상한 환자를 자기 몸처럼 돌보는
의사만 못 하다고 했더니 적당히 독실한 신자들이
조용해젔다. 나는 그래서 경쟁포기를 선언하려 한다.

잘 될런지 모르겠다

2012년 1월 20일 금요일

오늘은 기분 좋은 날

                   -강형용 박사님의 생신을 기리며-                       
                                        윤화진                                         

오늘, 존경하는 분께서 문자 회신이 왔어요 .
이 한 겨울에 기분 좋은 날

평생 의술로
환자를 자기 몸 처럼 돌보신 분                                          
목사보다
세상을 더 깊이 바라보신 분
환자의 고마움을
듬뿍 받으신 분
의술의 진수를
보이신 분
진료비 받기를
안스러워 하신 분
모든 의사가 폼내는
풍요한 생활을 접으시고
허름한 강내과 병원을
마지막 까지 지키신 분

이제, 그 겸허지심 푸시고
평안하고 즐거운 여생을 보내시길.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말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감사는 하느님의 가르침였지요

감사의 뜻을 이제야 겨우 알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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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월 19일 목요일

시 낭송을 잘 하는 방법 / 시하사






바른 소리로 말 맛을 제대로 살려야 합니다


낱말 하나 하나의 소리내기가 바르고, 그 높낮이와 길고 짧음이 정확해야 듣기 좋으며 뜻이 바로 전달됩니다. 그리고 말이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으며 마치 물 흐르듯 하면서 힘참, 고요함, 평화로움, 기쁨, 그리움 들을 나타내야 듣는 이가 느껴
귀 기울이게 됩니다, 이것이 시 낭송의 바탕입니다.


마음의 악보를 가져야 합니다.


시 낭독과 시 낭송은 다릅니다. 시 읽기가 아니라 시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낭송하고 싶은 시를 여러 번 읽고 뜻을 새기다 보면, 그 뜻을 목소리에 실을 수 있는 악보가 절로 가슴속에 떠오릅니다. 이 악보에 따라 듣는 이의 느낌에 깊이와 여운이 생겨나며,
거기다가 낭송하는 이의 개성이 살아 어울려 주면, '아, 아름답구나!' 하는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나무가 서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지만 당당하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같은 자연스러운 표정의 드러남이 중요합니다.
낭송하는 이의 들뜸이 지나쳐 불거지거나, 어색한 손짓 몸짓들로는 공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의가 살아 있어야 합니다.


몸가짐이 반듯하고 옷차림도 단정하며, 무대 오르내리기와 인사법에도 어긋남이 없도록 애씁니다. 여기서 서로의 믿음이
싹트기 때문입니다. 낭송하는 이의 이러한 모습에서 듣는 이들은 마음의 옷깃을 바로 잡게 될 것입니다.


시인의 시를 빌려서 낭송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노래]로 만들어야 합니다


낭송하고 싶은 시를 수십 번 써 보고, 수백 번 외워 오랫동안 빈틈없이 준비해 나의 노래로 되살려야 맥박 같은 힘과 햇볕 같은 위안과 남이 훙내낼 수 없는 색깔이 있는 낭송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연습을 되풀이해야 실수가 없습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낭송하다 막히거나, 잘못하는 것은 연습이 모자라는 탓입니다. 여럿이 함께 같은 시를 낭송하는
합송일 경우에는 소릿결, 숨결, 마음결까지 맞춰야 조화로움에서 아름다음을 풍기게 됩니다.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시 낭송은 어떤 성악가의 노래, 어떤 배우의 명연기보다 훌륭한 예술이라는 믿음입니다. 이런 자리 매김은 공연 예술의
한 영역으로서의 시 낭송, 예술가로서의 낭송가를 가능하게 합니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술혼으로 달궈진
시 낭송만이 명시의 감동을 진하게 되살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 낭송을 하게 되면 시하사

                                                               

       
시 낭송은 어떤 성악가의 노래, 어떤 배우의 명연기 못지 않은 훌륭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시 낭송은 공연 예술의 한 영역으로서 낭송 예술가를 가능하게 합니다  예술의 혼으로 달궈진 시 낭송이야말로 명시의 감동을 가슴으로 되살릴 수 있는 고품격 예술입니다.


       1. 상실된 인간성, 풍부한 감성과 사랑을, 시 낭송을 통해 감동적으로 맏날 수  있습니다.가지게 됩니다.


       2.  인간성을 회복시켜 줍니다. 사랑의 회복으로 인해 자기 정화와 이웃을 돌아보는  따 뜻한 마음씨를




       3.이웃과의 단절로부터 관계성을 회복하여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합니다. 깨달음을 통하여 자기와의 대면에 이르게 하고, 나와 이웃, 나와 자연, 나와 나의 관계성의 회복을 유도합니다.


      4.시는 감동입니다.  시의 정서는 정이며 사랑이고 우리가 상실한 정체성을 시를 통하여 회복할 수 있으며,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감동이 없는  사회에 마음의 위로, 용서와 화해, 성숙한 인간 관계를 만들어 갑니다.

시적 행위주의의 주장

                                                                                        윤화진



                   詩的 行爲主義 - Poetic Behaviorism- 또는  Poeming (?) 은 생소한 개념입니다. 사회과학 분야에서 행동주의 이론은 심리학에서 많이 논의되어 왔고,  50년대 후반에서는 미국 현대경영학에서 생산성의 능률을 향상 시키기위해 생산작업 현장에서 행위심리학를 연구하면서 발전 했읍니다. 시 문학에서는 '참여파 시인들의 행동경향을 보여 주었지만 이를 시적 행동주의 라고 할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읍니다..

                  그러나  최근 "시하느 사람들, (시하사)"의 소박한 모임이 생기면서 "시를 한다"는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생겼읍니다.

                   먼저 "시하는 사람들의 선언문"에서 밝혔드시, 이들은  "詩처럼 살고 싶어 합니다". (이해인의  서시에서). 시가 시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믿읍니다. 독자들은 "등단"했다는 시인을 존경하지만 시를 행하여  삶의 일부분으로서 즐기지 못 한다면 "시하사"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추운 겨울날 먼 산을을 바라보며 코트의 깃을 올리고 시하는 사람들을 찾어 가는 모습에서 시 행위를 발견합니다. 시적 행동주의는 더  더 깊게 닥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윤화진. "시하사'첫모임을 축하하며...   11/2/16 

시하는 사람들 (시하사) 의 선언문

                   
                                                                                 윤 화진


                              우리는 시를  사랑하지만     
                                                 소유하지 않읍니다.

                              우리는 시를  즐기지만
                                                 들뜨지 않읍니다.

                              우리는  시를 느끼지만
                                                  빠저들지 않읍니다. 
                              
                              우리는 시를  존경 하지만
                                                 자랑하지 않읍니다.

                              우리는 시를 신앙처럼 믿지만
                                                  미혹되지 않읍니다.

                              우리는 몸으로 시를 받들어
                             스스로를 나추고  멋있게 행할 뿐 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詩人이라기 보다
                              시하는 사람(詩爲人)이라 선언합니다.


                                                                   2011年 2月 7日
                        

2012년 1월 18일 수요일

먹이

                                 



   윤화진                                        
잉어떼가 몰려 들어                                                               
먹이 찾아 죽일듯 싸우는데
입 쩍 벌리고 훠져대며 
먹이 모리하는 덩치 큰 잉어놈이
마치 우리 재벌처럼 보여
는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저런,
그 쩍 벌린 입 모양이 돈 거둬 드리는
삼태기 처럼보이고
적은 잉어놈들 등 터지며 쫏겨가는 모습은
시장 바닥 노점상 밀려나는 모습 흡사해서
웃고 만 있을 수 없어
돌맹이 하나 집어 들어 덩치 큰놈에게
냅새 던지고 돌아 섯네
잉어 놈들도 노나먹는 법을 배워야 하는데
속이 후련하지 못하고
도가니 영화 본 쓴맛 같았어

             

2012년 1월 17일 화요일

Now and Here

                                      

                                                                                    Daniel H J Youn


                        I am the beloved one bornd as a loving one,
                                suffering though from the wordly life
                         Why should I be bothering as I can make
                     a heaven,                                                                                                                         
                            but I live in now and here, though not holy
                                       though not splendour,
                              I am a happier one that God know
                           I am so pround of myself here and now
                             God shall forgive that I insist of  myself
                              The Now and Here will never be empty
                                 though fulfilled in sorrow in the past
                                    as remains happy in the future
                             I can sing happily for my life here and now.
                                   

교만에 대하여-- 어설픈 참회록



                                                                          윤화진

                          오랜 동안 교만하게 살어 왔나 봐요
                          우리 집 사람도 옆에서 무척이나  안스러웠데요
                          자존심 건드릴 까봐 놔 두었데요

                          나는 겸손이 지나쳐서 손해도 보고
                          오해도 불러 이르켰는데 말입니다
                          왜 이런 인생의 착오가 일어났을 가요

                          사람은 자기가 행하는 행동을
                          때로는 인식하지 못하는 잘못을 저지르나 봐요
                          수신을 잘못해서 인가 아니면 세상일이
                          내가 생각하는 만치 논리적이지 못해서 인가
                          아니면 내가 너무 감성적이여서 그런가
                          솔직히 분간을 못 하겠어요

                          적어도 몬태뉴가 수상록에서 말 한것 처럼
                          나는 진실 된 것 만을 거침 없이 말 하고 행동했는데
                          상대에게 전달이 잘못 됬거나 교만하게 보였나봐요.
                          나는 국가 대표급의 운동선수 였지요
                          전국 체전에서 우승을 여러번 했지요
                          누구에게나 이겨야 했어요
                          누구에게나 자랑스럽게 보였어야 했어요
                          집착이 이루어낸 전리품인데
                          성서나 불경 대로라면 이것도 용서되지 않나 봐요

                          우겨데지 않고 드리데지 않고
                          이제 부터라도 합리적으로 집착과 이기려는
                          유혹을 버리고  견손해 볼게요

                          어느 정도 이기심은 있어야하지 않나요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실은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한 인생도
                          나름대로 잘 뚤어 왔지 않나요

                          교만이란 것을 달어 볼 저울이 있으면 해요
                          그것이 연옥을 벋어나는 칠층산의 첫번째 관문이래요
                          무사히 통과했으면 해요

                          이 글를 읽는 여러분 기도해 주세요
                          좀 편안히 살게 해주세요
                          이런 문제 풀어줄 강론 설교 설법은 없나요

                          시를 하며 집착과 이기심을 잃어 버리고 
                          더 멋있게 더 멋있게 살었으면 해요.
                          제발 좀 잘 살수 있는 길이 있으면 알려 주세요

                                      
                          

어설픈 참화록 2

                     


                                                            윤 화진

              어릴때 친한 두 친구가 있었어요
              만수와 수동이 였는데
              만수는 순하고 좀 느려서 늘보 였고
              수동이는 몸짓도 바르고 적극적이여서 깡다구 라고 했어요
              당시에 별로 없던 천주교 학교를 다녔는데
              나는 불교/유교 집안이라서 학교에는 가는데
              성당안에는 무서워서 마음데로 못 들어 갇지요
              담인 선생은 요지음 영화에서나 보는
              수녀복을 입은 아주 예쁜 그러나 무서운 수녀님 이였어요
              어느날 교실에 지옥이라는 큰 그림 한장을 들고 와
              너이들 죄지면 그리고 영세받지 않으면 이런 지옥에
              떨어 진다고 했어요
              대학에 들어와 군대에 갈때가지 이 지옥에 떨어지는
              가위에 눌러 거의 매일 놀래서 꿈에서 깨곤 했지요
              군대가 지옥 같었는지 그만 군대에서 이가위에서 벋어 났어요
              만수와 수동이 이야기로 돌아 가야 겠어요
              우연인지 둘이 만이 신부가 되기위해 신부준비 학교에 갇어요
              모두들 만수는 좋은 신부가 될거 라고 해지요
              수동이는 곧 학교에서 떨어져 나올거라고 하고요
              얼마 지나다가 친구들에게 물었더니 정 반대가 됬데요
              수동이는 졸업해서 신부가 됬고 만수는 그만 두었데요
              아하 하고 무릅을 쳤지요. 성공 하려면
              빠르고 적극저이어야 하는구나 하고 말입니다.
              지금 까지 그렇게 살어 왔어요
              어떤때는 그것이 교만하게 보이나 봐요
              용서해 주세요 무덤에서 까지 용서를 비는 일은
              없어야 하는데
              참 어려운 세상 살어야 하나봐요
              교만 보다는 겸손이 좋지요
              예수님 부쳐님 공자님 모두 겸손 한 분들이 지요
              나도 살때 까지 겸손 하게 살어야 겠어요
              

이웃 사랑 / 일본지진이 던진 종교적 의미

                       
                              


                                                                                   윤 화진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란 역설적 괴변이 있어요
                 집행 못한 복수심이 남어 있어서 지요
                 철 없이 무조건 고소하다고도 해요

                 일제때 많은 고초를 격은 친한분의 울분과 쾌제를 듣고
                 아무 말도 못하고 듣고 만 있었어요
                 하늘이 무심치 않다고요.

                 종교적인 판단을 하는 무지한 목사도 있고                
                 천벌이라고
                 하늘은 잘 잘못을 잘 판단해 왔나요

                 목사들 재벌들을 더 축복해 주시나요 
                 다윗과 솔로몬의 축복은 있었어요
                 이들을 거기다 부쳐 보지는 마세요
                 속이 되집히게 화가 날거에요

                 의로움이 탐욕 편을 들어 주나요 
                 헌금 많이 하는 분이 교회나 절에서 
                 되지도 않는 큰소리 쳐도 되나요
                 의욕적으로 좋은 일 하는 분도 있기는 해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했지요
    불경에는 이 보다 더한 말도 있어요
                 내몸이란 말을 빼먹고 적당히 자선을 하지요
                 이기적인 사랑 나 내가족 내사위 내며누리 먼저 이고요
                 우리는 너무 여기에 젖어 있어요

                 일본 사람들 좀 덜 한것 같이 들리네요
                 우리는 회사도 교회도 재산도 자식에게 넘겨쥐요
                 잘 하는 짓이라고 보이지 않네요     
                 나에 대한 집착이지요 어쪄겠어요

                 세속이 높으신 가르침을 이겨 왔어요
                 이기고 있어요
                 계속 이길거 에요

                 젠장, 망할 세상이지요 하느님 말씀데로 라면
                 이 글을 읽는분 그래도 참어 보시지요
                 죽기전에 의로움이 이기는 날이 올거에요

                 속이는 것은 아니 겠지요
                 순명을 해야겠어요 잘못 버티면 욕먹어요
                 잘못 하다가는 일본 처럼 혼나요


                 죽이던니지 살리던지 맘데로 하세요
                 그 런데로, 하라는데로 하겠어요

                 정권 신권 교권 모든 권력을 동원해서
                 마끼지도 않은 내 모든 것 가져 가세요                
                 불손 하다고요  좋와 하시네요

               주;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안 먹히니 페러디 은어가 무슨 소용이 있나요.
                    反詩的 접근은 후에 해야 겠어요. 산문시를 싫어 하는데 어절 수 없지요.
                    재미있게 봐주세요

여보세요

                     
Image Detail



                                 윤화진
                                                                                                   
                        하늘를 처다보고                                              
                       나도 모르게 여보세요 하고
                       말이 새어 나왔어요.
                       내게도 익숙지 않은 음성인데
                       멋있게 들렸어요.

                       누구를 불렀는지
                       아무 대답없는 모로로그죠.
                       옆에 누가 있었으면
                       실성한 줄 알겠어요.
                       정신을 가다듬으니 쑥스러웠어요.
                       내가 나를 불렀을 거에요

                       좀 헤매고 있을 내 영혼말입니다.
                       세상꼴이 제대로 되가는 것이 없어서
                       무척 속이 상한 모양입니다

                       꽃들도 조용히 못 지내나 봐요.
                       새들도 날기 힘들어 하고

저기요, 그게 그거죠

                                                                                                         
                                                         시하사

                 점점 어지러운 세상을 바라만 보다가
                 베드로와 달마가 맏났어요

                 달마가 물었어요
                 이천년전이나 지금이나 달러진 것 있어요
                 배드로가 대답했어요
     그게 그거죠
                 믿음만으로 사는 본보기를 보여 줬는데
                 돈을 이길만한 철학은 아직 없데요

                  베드로가 물었어요
                  道가 튼 당신같은 사람은 돈 었이도 살수 있어요
                  고개를 갸웃둥 하다가 달마가 대답했어요
      그게 그거죠                                                                           
                  요즘 같은 세상에 나도 자신 없어요

                  두분이 살던시절에 없던
                  애들 무료 급식도 하고
                  복지국가 만든 데요

                  베드로와 달마는 이마에 주름살을 지으며
                  걱정 했어요 모두 애는 쓰는데
                  저기요 그게 그거죠
                  둘이는 속으로 중얼 거렸어요
                  돈 만으로는 안되고
                  사랑으로 道가 터져야 하는데

어느 콩크르 에서

                                                                                시하사
                     


                                                                                          

                     콩크르 오전에                                                        
                      엄마는 기도를 드리네

                      스텔라는 힘을 내 
                      경쟁에서 이겨야 해

                      재능은 기본이고
                      엄마의 정성과 기도는 눈물 겹지요

                      벅찬 인생이
                      치열한 콩그르에서 시작이 되네

                      연분홍 사랑의 음색이 동트기 전에
                      검붉은 잎새 한잎 터지듯 피어올라
                      청중을 울리고
                      높은 옥타부 천정 뚫고 
                      하늘로 구름위로 날아 올라
                      엄마의 눈시울을 붉게 물들여

                      기도해주세요 부탁이
                      나의 귀가를 맴도네   
                      엄마는 오전에 
                      기도를 드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