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16일 월요일

反詩 小考 7 終言

                                                                                                         윤 화진

                이제 끝을 매저야 하겠읍니다. 반시를 많이 아는것 처럼 이야기 해왔으니 삶에 도움이 안되는 시를 쓰고  독자에게 읽어 달라고 할 순 없지요. 어려운 삶에 도움이 되려면 우선 쉽게 독자에게 닥아가야 되지요. 앞에서 여러번 말했듯이 이 것이 어려운 일이지요.

                다만, 필자는  반시를 더 공부해야 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여기 Parra의  대표적인 반시, 시 두편을 더 소개합니다. 그래도 의문이 되는 것은 시의 개몽적 또는 삶을 위로하는 시의 공급자 기능을 시인이 해야 하는 지는 더 생각해 보아야 하겠고, 시의 수요자 측면에서 시의 행동주의  즉 "시하는 사람들" 을 더 열심이 일구어 나가야 하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 것 같아서 솔직히 죄송스런 마음이 듭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웃지
                                                                                Nicarno  Parra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별로 몸이 안 좋다는 거야
                     속이 쓰리고 계속 어지럼증이 나를 괴롭히고 있어

                     갑자기 몸이 안 좋다는 것은 무슨 소리야
                     나는 아주 기분이 너무 좋은데
                     내 생애에서 이렇게 기분이 좋은 적이 없었거든
                     다만 나는 끔직한 일이 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야

                     좀 자세히 들여다 봐요
                     그러면 알게 될거야
                     왜 내가 우슴을 참지 못 하는지 말야

             위의 시에서 반시의 정서를 음미 할수 있으면 합니다. 더 주석을 달면 바로 반시적인 행위가 되 버립니다. 하나 더 간단한 것을 소개 하지요.


                       죽음의 과학 / The Science of Death

                                                                            Nicarno Parra

                     나는 크게 만족하고 있어
                     이 경탄할 만한 삶의 기회를 최대한 즐겼지

                     나는 이제 죽음의 과학으로
                     몇개의 중요한 삶의 문제를 풀어 보려해

              여기서 어쩔수 없이 잔소리를 달어야 하겠어요. 여기서 " 몇개의 중요한 문제" 란 정치적 혼란, 부정부패, 경제적 빈곤의 심화, 사회적 가치관의 타락, 문화적 퇴패등  몹시 못 맡당한 것 들을 아주 간결 하고 상징적으로 ( Denotative Expression!)  다루고 있지요. 반시에서 우리가 격는 일 들을 장황하게
나열 할 필요는 없지요.

             너무 처절한 사항에서 유모어가 끼어 들 틈이 없었나 봅니다. 죽음의 과학이나 천당에서의 사유법을 여기 끌어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보겠다느 것 이지요. 신학은 하느님의 과학 ( The Science of God) 이지 죽엄의 과학 ( The Science of Death) 는 아니거든요. 종교적이거나 신앙적 영험을 드리대 자는 것은 더 아닙니다. 시인 만이 즐기는 멈청난 "은유" 인데 시인의 상상의 자유가 번득이는 순간이지요. " 아무 것도 아닌 나와 아무 것도 아니 것을 시랍시고 끄적 거리는 자유를 누린다" ( 유안진) . 그 자유를 부러워 하며 그 겸손함에 머리 숙여 집니다.  끝.


주; 실은 Nicarno Parra 가 살고 가르쳤던 칠레국립대학에 다녀 오고 싶지요. 그런 기회가 올런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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