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화진
먼저 시하사 카페에 올린 필자의 시답지 않는 시 "유행가"를 먼저 읽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흔히 말해서 소위 뽕작이라든가 트롯트류의 대중가요를 부르면 아직도 저속하고 좀 수준 낮게 보려는 경향이 우리 주변에 있읍니다. 속칭 딴다라--DDR 라고 부르고 웃지요. 무슨 우슴인지 몰라도 웃어요. 2/4 박자의 계속적인 음률이 자칫 우습게 들리는지 값산 서민들의 음악이라고 보는 모양이에요. 그러나 최근 이 반복적인 트롯트음악이 심리적인 안정을 준다고 음향 심리학자들이 말 하고 있지요.
불란서의 샹송이라든가, 일본에서의 앵가도 그 나라에서는 대중적인 노래인데 그러한 휘진 대접은 받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여기 "유행가 해설" 은 필자가 근래 쓴 "유행가"를 좀 더 풀어서 그 배경과 의미를 조명 하려는 의도 가 있고 스스로 좋다 나쁘다 평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음을 밝힙니다.
우리의 국민가요라고 까지 말하는 눈물젖은 두만강은 우리 가요 100여년사상 가장 많이 불리운 노래로 알려져 있읍니다 그 노래의 배경은 일제때 독립운동 하신분의 애절한 사연을 담고 있지요. ( Daum 검색바람).
그런데 이 노래가 오랜동안 애창곡으로 내려온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물론 그 곡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고 애수에 차서 부른 당시 최고의 가수 고복수의 가장력도 좋치만 그에 못지 않게 노래 말, 그 가사가 또한 훌륭한 은유와 호소력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특히 주목되는 부문은 2절 1-2행의 " 강물도 달밤이면 목놓아 우는데, 님 잃은 이사람도 한숨을 쉬이니" 입니다.
독립운동에 참여하려 집을 떠난 님 을 찾아 수만리를 해매다가 다달은 두만강변에서 님은 이미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처형된 사실을 알고 목놓아 밤새도록 통곡하는 장면을 그린 대목입니다. 여기의 강물도 달밤이면 목놓아 운다'의 행은 우리가요 수천 수만개의 노래가사 의 한 행중에서 그 비슷한 것 조차 찾어 볼수 없는 최고의 구절이 아닐 수 없읍니다. 과장 이라고요. 봅시다. 님이 처형된 그 험난하고 외진 두만강 어느 기슭에서 님 그리며 통곡 하는 여인과 그녀를 비추는 달빛과 그 강물의 통곡을 연상해 봅니다. 출렁이는 강물결이 달 빛에 부서지며 힌 물방울로 하늘을 날며 솟구치는 파도의 통곡 소리, 그 은유의 표현은 필자가 아는 어느 노래 말에서도 비유할 수 없는 구절입니다. 김소월 박목월 서정주 정지훈 그리고 한용운을 살펴도 없읍니다. 물론 여기서 그 은유를 말 합니다. 그 비슷한 은유의 표현이 있다면 그것은 독자들의 판단에 맏기겠지만 비슷한 것을 찾거든 카페에 올려 주시지요.
이 구절은 이노래의 작사자가 밤새 통곡하는 이름 모를 여인의 사연을 듣고 가사로 옮겼다고 하니 더 실감있게 작사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옛 중국의 시인중의 달빛과 강물을 배경이나 소재로 한 이백, 두보, 소동파의 한시중에서도 나의 한시의 실력이 과문한 탓인지, 이 만한 메타포를 보지못 했읍니다. 그러면 우리의 대중 가요와 괘를 같이 하는 샹송은 어덯한가 ? 필자가 좋아하는
고엽, 장미빛 인생등의 이브 몽당, 에디드 비아푸가 부른 샹송 가사도 여기에 이르는 은유의 가사가 있으면 "나와 보라고 " 필자의 시 "유행가"에서 외치고 있지요.
실은 시하사의 선언문에서 언급한 "우리는 시를 느끼고 좋아 하지만 빠져 들지 않는다' 를 벋어 난것 같읍니다. "강물도 달밤이면 목 놓아 우는데" 2절 1행에 너무 몰입 했나요. 허나 여기서 멈추면 면목이 없지요. 평자는 이 가사의 대목을 19세기 중반에 유행했던 보드레를의 초현실주의 표현에 비유해서도 그 표현에 있어서 버금가고도 남는다고 보고 있지요. 보르래르 의 악의 꽃은 근대시의 시작이라고 도 하지요. 이 시는 당시의 사회상을 은유했느데 이를 이해 못한 법정의 판사들이 벌금형을 내렸읍니다. 당시 이시의 초현실적이 현실의 은유를 이해 못했지만 오늘날 혁신이라든가 진보적인 사상의 기본틀을 제공 한 것이지요. ( 이 부분은 후에 "악의 꽃" 해설에서 다루 도록 하지요)
그런데 이 눈물젖은 두만강의 작사자는 당시 북간도를 유랑하던 떠돌이 DDR 들인데 어덯게 당시 유럽에서 성행했던 초현실주 시의 표현 (기법)을 구사했는지 모르겠읍니다. 이 2절 1행의 시구절은 초현실적이고 또한 이성과 사실적인 실체를 넘나든 흔적이 보입니다. 무리하게 끌어 드리려는 시도가 아니고 " 꿈이 현실이고 현실을 꿈으로 착각 하는 초현실주의적인 시의 창조적 직관을 엿 볼수 있어서 필자는 더욱 놀라고 경탄하지 않을 수 없읍니다. 필자는 늘 자칭 초현실주이자( Surrealist) 라고 하고 다녔지요. 여기 아시아의 적은 나라에서도 유사한 초현실주의자들이 두만강을 맴돌아 유랑생활를 했고 슬퍼서 목놓아 우는 여인을 초현실적인 은유로 표현했다고 상상해 봅니다.
시 "유행가" 중 2 번쩨 "목포의 눈물" 1절 1행 " 사공의 뱃노래 가물을 거리며" 는 보기에 한가한 포구의 낭만적 모습의 배경이지만, 실은 이별을 앞둔 두 연인의 눈물 짖는 사연의 은은한 서곡 을 장식 하지요. 목포 앞 바다 삼학도 에 깊이 스며드는 구슬픈 "사공의 뱃노래" 는 부두의 여인의 이별의 한을 안은 옷자락을 눈믈로 바라보는 모습 입니다. 이를 "아롱 거린다"로 표현 했지요. 당시 일제억압속에서 어절수 없이 떠나는 님의 서글픈 모습을 잘 그려 냈읍니다. 요지음 그 많은 부두의 이별을 노래한 유행가의 첫번쩨 포멧 입니다. 끝행은 "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음" 으로 나라의 설음을 목포로 대신해서 불러 일제의 검열을 벋어나 유행시켜 오늘날 국민가요로 불러내려 오게 한 한 시인의 은유법의 사례입니다. 시 만이 가능케 하는 시의 파워 입니다.
오늘 날 식민지 통치나 독재정치 밑에서 저항하는 노래 또는 시는 다 이런 은유의 속성을 지녔고 이를 저항시 참여시 또는 반시라 하여 널리 불려지고 있지요. 이를 DDR 이라고 웃어 넘켜도 됬겠어요 ? 특히 도재 정권 칠래에서 꽃을 피운 "니카르로 파라"의 반시는 이런 은유를 통속어로, 유머어로, 또는 냉소와 비극의 희극화로 묘사하고 "드라이" 하게 펼저 보이지요. (시하사 카페에서 6회 걸쳐 소개한 윤화진의 反詩 小考 참조). 지난 반세기는 우리 민주화 과정에서 이런 저항시, 참여시가 많이 소개 됬읍니다. 노래로 시가로 되어 있어 읽는 재미가 있고 감동적이지요. 좋은 예가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 이던가요.
유행가 의 3 번째 가사는 1950년대 후반 서울 명동성당의 종소리을 대상으로 한 노래가사 입니다. 왠 유행가 가사에 성당 의 "미사의 종소리' 가 주재가 됬을가 의아해 할수 있읍니다. 이노래의 전반부 1 -2 행은 화려한 명동거리에 황혼이 찾아들어 멜랑고리한 분위기를 안고 밤의 문화가 시작 할지음 한여인이 지나온 과거사를 떠올리며 "죄많은 인생" 의 뒤를 돌아 봅니다. 이때 멀리서 들려오는 성당의 종소리로 애수에 젖는 장면을 연출 하고 한 여인의 한 어린 과거를 참회하는 모습의 진정성은 읽을 수 있읍니다.
여기서 우리 유행가 가사가 딴따라의 저속한 속물이 아니라, 소위 몽태뉴의 중세적인 윤리관과 삶에대한 참회 그리고 밀래의 "만종"의 그림에서 보여준 은총에 감사하는 모습을 함게 볼 수 있다고 하면 지나찬 외연의 과장또는 Twisting으로 보겠읍니까. 어느 누가 어디에서 어덯게 하던 참회는 참회이고 하느님에 대한 인간적인 감사는 감사인 것입니다. 이를 폄회하거나 저속한 표현이라고 몰고 가서는 안된지요. 특히 평자는 밀레의 만종의 그림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직법 보고서 감상 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를 참회 한다던가 감사의 마음으로 보지 못했고 이제 유행가의 가사를 통해서 " 아베마리아의 종소리 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을 고백 합니다. 이제 생각 하니 밀래의 만종은 점말 좋은 그림입니다.그래서 유행가를 DDR이라고 쉽게 웃고 넘길 수 없다는 말씀을 장황하게 드립니다. 나의 시 유행가의 가사의 문학적 연골 고리를 찾는 다는 것이 다만 "드리데는" 객기가 아니였으면 합니다. 퇴페적인 "데가당"으로 봐서는 더욱 안됩니다.
유행가의 4번째 소재는 낭만에 대하여라는 최백호의 탱고풍의 노래와 가사 입니다. 평자는 여기서 유행가 예찬론을 피우다 잘못 큰 수렁에 빠질수 있다는 위기감 마져 듭니다. 대중적인 인기와 음반의 판매 또는 요지음 인기 차트 상위를 찾기위해서 인기영합을 위한 저속한 가사를 찍어 내서 좀 황당 하거나 당황한 예도 얼마던지 있읍니다. 유모어 적인 것뿐만 아니라 아주 성적으로 자극적인 가사와 노래도 많이 있지요. 그래서 노래의 가사의 검열 및 규제제도가 있는 문화의 후진성이 상존 하고 있읍니다. 예로 "울려고 내가 왔던가", "댄사의 순정", "무기여 잘 있거라" 등의 많은 가사가 그런 부류에 속 합니다. 사회적인 다양성과 상업주의 가 만들어낸 합작품 입니다.
"도라지 위스키의 낭만을 마시고"는 낭만의 뜻이 잘못 전달될 소지가 많읍니다. 서울 외각의
5-60년대의 한 다방에서 섹스폰 소리가 들리고 마담과 나누는 별로 할일 없는 손님과 나누는 농담하는 장면이 낭만이겠는가 ? 좀 아득합니다. 낭만의 의미를 소위 중세 이후 유럽에서 낭만주의와 혼돈 해서는 안 되겠고 일제 강점기에 방황하던 인텔리들의 도피적 행태라든가, 전후 다방에서 있었던 장면을 낭만으로 받어드리기는 좀 어색 하지요.
크라식(Classic) 이라하여 전통적 고전적 가치를 말 할때, 개인에 빗대서 크라식 하다 하면 답답하고 융통없다고 하드시, 낭만적이라 하면 자칫 통속적 퇴패적으로 일커르게 된는 경향을 봅니다. 도라지 위스키의 낭만을 마시는 사람을 저사람 낭만적이야 하면 크라식 하다는 말 처럼 의미 전달의 손상이 보입니다. 흔히 낭만적이다 라는 의미는 어리벙한 사람이 연정을 나름데로의 분위기속에서 찾으려는 좋은 뜻으로 보아서 무리가 없을 듯 하고,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가 탱고의 음조를 타고 유행가로서 성공한 노래인 것으로 보입니다.
끝으로 조향조가 부른 " 만약에 당신이..." 는 개인적으로 좋아 하는 노래 말인데 이 반복되는 구절도 삶에 대한 실존주의 적인 까뮤 와 사트르와의 연관을 찾을 수 있을가 의심스럽읍니다. 가사의 화자는 사랑을 얻기 위해서 목슴을 내놀수 있다고 한다면 실존하는 삶을 걸어 놓고 이야기하는 자세인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더우기 삶이 구찮어서 살인 을 하는 메르소의 이방인적인 까뮤의 패러디가 "만약의 당신을.. ' 가상해서 써내러간 삶에대한 인식과 같다면 무리인 것 안닌가? 더우기 사트르의 인간 자유의지론은 이노래 가사의 중심을 가르는 줄거리가 될수 있읍니다. 죽을 수 있는 자유의지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일수 있는 비극적인 사황까지 미치게 되고 있읍니다. 다만 좀 미흡한 것은 그 가사 와 노래자체의 진정성이 결여 되 있다는 점입니다.
전반적으로 위 의 해설 유행가의 잡문이 우리의 노래가사를 풀이하느데 지나 친 점이 있드라도 요지음 유행하는 젊은이의 노래 가사는 모두 한편의 시이고 이를 풀어 그 철학적, 문학적 의미를 찾어 보는 평론적 시도는 재미있는 장르를 찾은 듯하여 즐거운 생각이 들었읍니다. 최근의 "제발" 이라는 가사를 접했는데 이를 어덯게 틀어 볼런지 궁리 중 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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