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화진
도산 이퇴계 선생은 평생 학문 (性理學)에 몸과 마음 바치면서
2000 여수의 시를 지었읍니다.좋은 경치를 바라보던가 좋은 일로 흥취가 오르면
시를 (물론 한시) 를 읊었읍니다.
시는 그 자체가 흥겹고 즐겁지만
퇴계는 진리를 찾아가는 한 수행으로 본 듯 합니다.
우리가 시하사에서 "시하는 사람들"의 의미를
찾아가는 가운데 퇴계선생께서도
거의 같은 말씀을 하신 것을 보고 놀랐읍니다.
그의 언행록 (言行錄) 에 "시를 배우(하)는데 입으로 만
떠들고 몸과 마음으로 체득 하지 않는다면 시를 즐기다가
뜻을 잃음을 면치 못할 것이라" 라고 했지요
시는 느끼고 즐기는 것 이기도 하지만 마음을
바로 잡는데 큰힘이 된다고도 했읍니다.
詩爲所以正心也라고 할수 있지요.
그러나
詩作이나 詩爲가 감당할수 없는
화려한 말이나 표현 또는 그런 행위를 하면
"연잎이 감당할수 없는 물은
잎에 담었다가는 곧 버리는 형세"가 되지요.( 법정스님 말씀)
유명한 수상록을 쓴 몽테뉴의 말을 빌리면
시는 적당히 건성 건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어요.
불편하기도 하지만 기븐좋은 긴장상태가 지속 되는 것이지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상가인 인도의 "구르마이"는
명상 한다고 마음을 놓고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몸과 마음을 푼듯 하지만 엄청난 집중을 거쳐
공(空-眞我)에 이른다고 하지요
시하사님들 모두 열심이 해 보시지 않겠어요.
우리의 "시하는 사람들의 선언문" 이 다시
우리를 일 깨워 주는 대목입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