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24일 화요일

나의 엑소더스 2 / 때 늦은 탈출기



                                        
                           
       
                                                                                                                 
홍해를 건너온 기적 처럼 도착한 곳은
지금의 흙석동, 과천으로 넘어가느 골목이였다.
큰길은 군 부대 후퇴로 모두 막히고, 피난민은
모세가 지나간 시나이 산이 아니라 
관악산이 앞을 가로 막고 서 있었다.
나는 지금도 관악산을 좋게 안 본다.

소풍이라도 떠나온 듯 어린 여동생 셋은
영문모르고 잘 따라 나섰다. 평생 외출을
모르시던 어머니는 큰 홍역을 치르시고 계셨고
나는 소풍길에 들어선 반장처럼 소수래를
열심이 끌고 신나 있었다.

갑자기 술렁이는 피난행열은 입소문으로
이미 중공군이 우리를 지나가서 수원을
점령했는 소식이다. 더 믿고 나갈 가나안 땅은
없어진 것 이다. 그런데 우리를 덥친 것은
따라온 이집트 군이 아니라 하늘을 나르는
쌕쌕이 미군 비행기였다. 중공군이 우리에게
석이지도 않았는데 우리를 마구 쏘아댄다.
나는 그 조정사가 그렇게 똑똑하고 영악한지
처음 알었다. 실로 구사일생 이다. 더우기
고마운 것은 우리는 아무도 다치지도 않았다.
할머니께서 늘 왜우시던 '관세움보살' 덕분인 것 같다.

이제 방향설정을 위한 전략회의다. 참모장 격인
나는 되 돌아 간다는 결론을 내렸다.
부대원을 모두 놓아두고 서울 정찰에 혼자 나섰다

천신만고 끝에 건너온 얼어 붙은 한강을 다시 넘는 일이다.
이번에는 앞사람을 따라갈 줄도 없다.먼저 건너 올 때보다
얼음이 더 녹아서 발길이 더 질척인다.
그래도 몇사람이 뭉쳐서 의지하고 건너서 겨우 끼어 들었다.
얼은 강 중간쯤 여기저기서 외마디 소리가 들린다.
나는 한발 한발 내 딛는 일에만 집중했다.
무사히 강가에 닫았다. 지금의 용산 나루터 어디쯤이다.

이제 척후병은 날개를 달었다. 지금 숙대와 효창공원을
가로 질러 만리동 고개를 넘어 서대문 집으로 일사철리로
내 달렸다. 감나무꼴 산등성이에서
집의 지붕이 보인다. 한숨을 돌렸다.

대문을 밀어 졌치고 집안으로 들어 선다. 할머니께서 놀래며
맞아 주신다. 어쩐일로 혼자 돌아 왔냐고 놀래시며 묻는다.
대답대신 할아버지께서 안 보이시어 여쭈었더니 건너방을
가리키며 돌아 가셔서 그방에 모셨다고 하신다

가슴이 무너지는 듯 하여 정신없이 대청마루를 건너
방문을 열어 졋쳤는데 빈 방이 였다.

할머니께서 나를 보고 우스시며 놀리신 것이 였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60념후 지금 까지
할머니의 유머어는 잊어지지 않는다.
그런 절박한 순간에 그런 농담을 하실 수 있다니 말이다.

죽으라고 그냥 두고 떠난 어린 손자가 막막하게 살 길이 없으신
처지에 서운하셨던 모양이다. 살어 돌아온 어린 손자에 대한
농담은 할머니의 손자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
고래장 치르고 떠난 손자가 돌아 온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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