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12일 목요일

어느 가난한 시인의 죽음 / 시평

-여림 시인을 생각하며-                            
윤화진

어느 가난한 시인의 죽음
비록 병사라 하드라도
그가 격은 가난과
그 시달림. 그 처절함에
무심한 이웃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했는데
목슴 다 자기가 쳉겨야지요.
좀 자세히 드려다 보면
자기 시 하느라
남의 일 크게 신경쓸 생각 안들드라구요
주변에는 흔한 대체적인 이기주의
자선모임은 꺼려요
홀로 따뜻한 마음들
순수해질수록
남에게는 냉담해져요


살어야할 근사헌 이유

                              여림

종일
살어야할 근사한 이유를 생각해 봤읍니다.
근데 손벽을 칠 만한 이유는 좀체
떠오를지 않았어요.
중략

저녁 무렵
지는 해를 붙잡고 가슴 허허하다 끊어버린 손목
여러 갈래 짓이겨저 쏟던 피 한줄
손수건으로 꼭, 꼭  북어 흐르는 피를 접어 매고
그렇게도 믹막히도 바라보던 세상

세상이  너무도 아름다워 나는 울었읍니다.

흐르는 피 꽉 움켜쥐며 그대 생각을 했읍니다.
홀로라도 넉넉히 아름다운 그대

지금도 손목의 통증이 채 가시 질 않고
한밤의 남도는 또 눈물겨웁고
살고 싶읍니다. 나는
누구보다 열심이 살아 있고 싶읍니다.
중략

내게선 늘 , 저만치 물러서 혼자 저만치 살어가는 세상
풀빛 주는 노래 한 줄 목청에 묻고
나는 그대 생각 하나로 눈물 졌읍 습니다.


 여기 시인 여림의 처절한 모습에서 자신이 가난하여 어려움이 있다는 말은 어디에도없읍니다. 시를 쓰기 위한 자해행위 ? 그럴 수는 더 없읍니다. 그러나 사모하는 '그대' 가 있어도 늘 멀리 느껴지고 자신의 살아가는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역설적으로 세상은 더 아름다워 보이고 더 열심히 살어야겠다고 외칩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어려울때 더 위축되고 심리적으로 살 의욕이 없어 지지요. 기피증 또는 자기 상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여림의 다른시 "나는 집으로 간다"에서 는 "생계'를 걱정하고 빈곤으로 부터의 공포와  불안 그리고 인간존엄의 가치가 극도로 훼손 되는 모습을 보입니다.  화가, 시인인 경우 더욱 그러 합니다. 에드가 알랜 포 (Edgar Allen Poe) 의 의문의 죽엄, 빈센트 반 고흐 ( Vincent Van Goh) 의 자살은 그 유사성이 보이고. 이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극도의 빈곤 때문이였습니다.

 '나는 집으로 간다' 에서 가난으로 인한 시인의 자괴감 자기상실의 비극은 자신을  '길 바닥
에 잡품을 느러 놓고 초라한 눈빛으로 지나가는 행인을 응시한는 잡상인' 에 비유하고 있지요. 안 팔리고 실음에 젖는 실의와 무관심을 감당 하지 못하고, 현상모집 당선자로서 등단한 시인의 자존심을 잃개 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생계를 걱정 합니다. 자신을 위로 하느라 소주병이 계속 나돌고 알렌 포나 반 고흐처럼 술에 취해서 지내게 되는 삶의 악순환이 게속 되었지요. 끝네 가난이 시인을 삼키고 말었읍니다.

여림의 천재성이 아까웁고 살어서 삶에 대한 긍정적인 시를 써서 우리 사회를 더 밝게 했어야 했는데 끝네 그를 살려 내지 못한 체, 가난이 시인을 죽음으로 몰고 간 비극을 낳게 했읍니다. 여림의 시 '나는 집으로 간다'를 우리 미안한 마음으로 읽어요.

나는 집으로 간다
                                여림

몇 번이나 주저앉았는지 모른다
햇살에도 걸리고 횡단보도 신호등에도 걸려
자잘한 잡픔들을  길거리에 늘어놓고
초라한 눈빛으로 행인들을 응시하는 잡상인처럼
나는 무릅을 포개고 앉아 견뎌 온 생애 와
버텨가야 할 생계를 간단없이 생각했다

해가 지고 어두름이 떠오를고 이윽고
밥플처럼 입술 주위로 묻어나던 싸라기는
아주머니 여기 소주 한 병 주세요
나는 석유난로 그을음 자욱한 포장마차에 앉아
가락국수 한 그릇을 반찬 삼은 저녁을 먹는다

둘러 보면 모두들 살붙이 같고 피붙이인 사람들
포장 틈새로 스며드는 실바람에 찬손 가득
깨진 유리병 같은 소주 몇 잔을 털어 넣고
구겨진 지페처럼 등이 굽어 돌아가는
시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오랜 친구 처럼
한 두 마디 인사라도 허물없이 건네고 싶어 진다

포장을 걷으면 환하고 따뜻한 길
좀 전에 내린 것은 눈이 아니라 별이었구나
옷자락애 묻어나는 별들의 사금파리
멀리 집의 불빚이 소흑성처럼 둥글다

이미 유명을 달리한 시인의 시, 그것도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시인의 시를 함부로 논하거나 평하는 것이 조심스럽읍니다. 이는 시로 쓴 시인의 일기 이니까요.

'나는 집으로 간다' 는 좌절, 자괴감, 빈곤의 고초, 생계걱정, 밑바닥 생활의 일상, 특히 자기와 같은 부류의 빈곤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 나락으로 떨어저 가는 절망에서의 카타르시스 와 윤동주식 (서시에서) 의 모든 만물을 사랑하고 싶은 심리적 순화, 그래도 아름다운 세상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가 안식을 찾으려는 발길 등의 반시적 Juxtaposition (倂記)로 곽 차 있어 숨 돌힐 수 없이 독자를 압박해 오고 있읍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소품과 배경은 자못 일상에서 흔히 보는 것 들이고 서정시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장식품이나 낭만적인 분위기하고는 거리가 멀지요. 한 송이 국화, 술익는 마을, 라이락 꽃, 진달래, 구름에 달가듯 가는 나그네 라든지 말입니다. 로숀/머리기름 바르고 들척 지근한 백화점식 시 강의 다니는 영웅적인 상이란 상은 다  받은 詩商과는 아주 다른 Format 입니다. 횡담보도, 신호등, 잡상인,포장마차, 주방 아줌마, 소주병, 가락국수, 반찬, 석유난로, 깨진 유리병, 꾸겨진 지페 등이 등장합니다. 무지개, 구름, 달 샛별, 황혼, 꽃과 나비, 바다, 그림, 아름다운 연인 등은 찾아 볼 수 없읍니다.  아래 4절 21행을 나누어 더 자세히 살펴 보지요.

 1절 1-2행 에서 '몇 번이난 주저않은지 모른다/ 해빛에 걸리고 횡단보도의 신호등의 걸려", 話者는 반복되는 좌절을 은유적으로 잘 표현해 내고 있읍니다. 실망과 좌절에서 혹시 주저 앉어 울어 보신적이 있으십니까? 실은 화자는 단란한 가정 과 작은 아파트에서 아내와 일상을 거정하면서 아이들 키우며  화목한 삶을 꿈구어 왔읍니다. 그러나 여의치 못하여 몇번이고 주저 앉은 것입니다. 까뮤의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 처럼 짜증스런 해빛과 횡단보도의 신호등에 걸려 좌절은 더욱 강렬하게 온몸을 휩쌓고 있읍니다.



3- 4행은 이 시의 핵심 부문이다. 자신을 '지나가는 행인을 초라하게 바라보는 잡상인의 모습'에 비유한다. 평자는 이 행을 읽은 후에 길가에서 잡품을 파는 잡상인의 모습을 유심이 관찰 하곤 한다. 잡상인의 심리적인  면을 더 이해하기위해 직접 잡상인을 해보고 싶다. 실상이야 같을 수 없지만 안 팔리고 불안하고 행인의 무관심, 스스로의 내면의 초라한 모습을 상기 하면 여기 화자의 심리, 자괴감과 경제적인 빈곤으로 인한 좌절을 를 더 이해할 것 같다. 5-6 행의 '무릅 포개며  안져 살어온 모습'과 다가올 '생계'를 걱정하는 모습을 잘 답어 내고 있읍니다.편안히 읽기에 안스럽고
가슴저린 이야기 입니다.

1절의 마지막행인 '버텨나가야 할  생계를 간단앖이 생각 하다'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밝히고 있다. 기본적인 의식주의에서 생계를 위협하는 것이 무었보다  식생활인데 이시의 아래 몇구절을 보면 이미 화자는 절대 빈곤층으로 여겨 집니다. 생계가 유지가 않으면 불안 공포 실의에 휩쌓여 생활의 일상이 무너지고 삶의 대한 의욕도 점차 잃어 가게 되지요.

2절의 1-2 행은 좌절에서 일어나 일상으로 돌아가는 장면이다. 해가지고 어두어 지고 허기가 몸속으로 찾아 들고 '밥풀처럼 입 주위에  묻어 나는 싸라기는' 이라고 정상적인 식생횔이 이루어 지지  않고 있음을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다. 싸라기는 식 생활의 최저의 상징으로서 뭉개진 쌀을  의미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옛날 쌀방아간에서 조금씩 주서 가곤 했다. 화자는 가난의 이야기를 더 이어 가지 못했다.

'아주머니 여기 소주한병주세요' 의 2절 3행은 좌절과 실망에 지친 몸을 위로하려 외치는 소리다.
평자에게는 '나 좀 사려줘요' 하는 목소리로 들린다. 시인은 여기 말고 다른시 에서도 계속 소주 
한병을 찾늗다. 좌절을 희망으로 바뀌는 무슨 신비의 약 저럼 말이다. 가장 값싼 처방없이 살수
있는 신경안정제 또는 좌절회복제인 것이다. 석유나로 끄으름 자옥한 포장마차는 이 처참한 상항과 잘 어울리고 허기진 속을 가락국수 한그릇으로 '반찬삼은 저녁식사'로 채운다. 반찬이 있을리 없지요.

제 3절은 전체 시 흐름의 큰 반전이다. 좌절, 그리도 빈곤 하진만 일상으로의 회복이 있고 어느 정도의 취기에 젖어 포장마차 안에 주변을 살펴보니 시인과 처치가 거의 같거나 그만 도 못한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평자는 이 장면을 화자의 연민의 정 이거나 측은지심으로 보기 보다는 자신의 밑 바닥의 처지와  결국 이 가난을 극복해 내지 못 하리라는 절망에서 삶에 대한 카타르 시스  아닌가 보입이다. 윤동주의 서시의 ' 나무 잎에 스치는 바람소리' 만치 민감해지는, 절망에서의 심리적 순화를 거쳐  자신의 주변에 있는 가난한 군상들과 나누고 싶어 지는 것이지요. 여기 가난한 사람들은 나무잎이고 시인의 애환은 바람소리  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그들에게  미소짓고 십고  또는 말을 걸어 위로 해주고 십은 것입니다. 이러한 시인의 시적인 정서를 이해하기 위해서 제 3 절의 7개 행을 다시 읽어 보시지요..

'나는 집으로 간다' 의 마지막 절은 시인이 허름한 포장마차의 칸막이를 걷우고 밖으로 나옵니다. 
 포장마차 안에서는 눈이 오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석유 난로에 끄으른 포장마차에서 나와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환하게 집으로 돌아갈 체비를 한다. 아 !! 이게 원일입니까. 시인은 엄청난 환상에 젖어 이승에서 보던 눈이 내린 줄 알었은데 하늘에서 별이 눈 처럼 내리고 있었읍니다. 시인은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고 하늘나라에서 별 하고 놀고 있었읍니다. 시인은 멀리 찾아갈 길을 이미 찾고 있었읍니다. 찾아갈 집은 멀리서 이세상이 아닌 소흑성의 둥근 불빛으로 시인을 기다리고 있었읍니다.

시를 하던 시인 여림을 기리고, 그분은 시하사의 시행위주의에 부족함이 없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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