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1일 화요일


        月田의 諷刺, 아! 그것이 絶叫 인줄은....

                                                                       윤화진

     우리의 격랑의 시대, 당대 선비 문인화가 月田인들 조용히 지낼 수 있었을까? 기성화단의 주류요, 미술학계의 주측를 이루었던 월전의 침묵은 동조아니면 반역일 수 있었다. 반체제의 젊은 화가들은 -임옥상을 비롯한 동양화 서양화가를 가리지 말고- 화단에서는 당시 피로서 물감을 대신했다.

이 시절 월전의 이탈은 인상주의와 자연주의를 탈피하려는 20세기초의 표현주의 (Expressionism)와 초현실주의Surrealism) 출현에 벅음가는 우리 기성화단에 대한 하나의 충격이요 도전이였다. 이를 조용히 받아드리는 미술평론의 통상적 선비적인 태도는 제도권과의 야합아니면 무능이였다.

느닷 없는 노묘怒猫의 출현은 미인화 초상화 성화 또는 사군자 화조 관념산수가 주류를 이루었던 월전의 문인화 화풍의 붓 끝에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이를 화단이나 평론에서는 후기 신문인화라 하고 '형태가 아닌뜻을 그리다'의 표현주의 경향을 풀어서 제목을 달었다.

아니다!, 몸에서 피가 꺼구로 돌지 않고서는 '노묘'의 분노와 '일식'의 좌절이 나올 수 없다. 이를 어느 노화가의 편안한 화풍의 변화라 했던가? 처절한 시대정신이요 저항의 몸 부림이였다. 이어지는 노호老狐나 귀관鬼關, 유인원도, 기아생식지도, 침판지군환호, '방자한 단군후손"도 등이 단순히 방관자적인 풍자가 아니라 흐트러진 사회와 인간성의 회복을 호소한 절규였다.

풍자Sacarsm, 냉소Cynisism, 은유Metaphor의 현대시의 기법이 반시적Antipoetry 으로써
사실을 외곡하거나 방관자적 어휘변형Twisting의 즐거움 찾기보다는 거역할 수 없는 현실과
오히려 진실에 더 찰저하게 다가는 원숙한 행위다. 월전의 이러한 분노, 좌절, 저항, 또는 문명비판적인 화풍의 변형은 행위예술에 가까웁다. 이런 그림을 그리는 현장에 누가 있어 그행위를 목격했거나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기록해 두었다면 '편안한 비판'이 아니라 '분노와 좌절의 계절"을 목격하고 도 남었을 것이다.

월전의 1980년작 '절규'絶叫를 보자. 후기 표현주의 작가 뭉크의 '절규'가 세상의 혼돈을 그려내 예술적인 작품으로 만이 아니라 비극적인 인간 인식에 불을 당기고있었다. ( 그 그림이 이번 소더비 뉴욕 경매에서 피카소를 능가하는 값으로 천 오백억을 호가한다는 보도가 있다.)  세계 1차대전이후 유럽의 혼돈의 사회에서의 '절규'와 비교해서 월전은 우리 7-80년대의 정치적 탄압과 자유를 갈망하던 우리의 '절규'를 화폭에 잘 담어냈다. 환경오염의 그림은 자못 환경인식의 선도적인 역활을 했다. 불의를 보고  침묵하는 선비는 선비일 수 없다. 우리 이조 500년의 역사가 이를 잘 증거해준다.

커다란  오버싸이스 배경의 붉은 해는 조여오는 불의를 상징적으로 잘 낟아 냈고 세마리의 의인화된 검은새들은 거칠은 숲 위에서 낮게 날르며 소리내어 피를 토할 듯 절규한다. 아 그 새들의 눈을 보라. 이는 월전의 피줄선 눈망울이다. 바로 월전의 얼글을 보는 듯하다. 이 것을 풍자화라 하고 '뜻을 그린' 후기 문인화라고 보면 이는 너무 안일한 틀에 박힌 평론의 전형이다. 일상의 사람들을 일깨워 작가의 시대정신을 전하고 미술의 사회적 기능을 펴 냈을때  뭉크의 '절규'처럼  세계적인 그림의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미술 평론은 소아병적이고 우믈안 개구리 식이다. 그의 제자나 아류의 용비어천가식 평논에서 Global 한 문제인식이 가능 하겠는가? 

우리가 다 아는 월전이 '문인화의 3절'이라 칭송하기 보다는 그의 시대정신과 투철한 예술혼을 이어 받어야 했다. 그의 풍자가 차마 지고의 절규였고 호소였음을 인식하는 하는 100주년 기념전이 됬으면 한다. 월전의 이런류의 그림과 그 배경을 좀더 깊이 있게 관찰하고 문명비판적인 차원의 그림의 평을 해 나갇으면 한다. 이는 동양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흥미있는 시도가 될 수 있다.


주석; 필자는 과문한 닷인지 월전이 이런 류의 그림을 그렸다고 상상도 못했었다.
         장석구 관장님의 월전 그림소개를 받고 솔직히 큰 충격에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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