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10일 화요일
하이구 / 시평 윤화진
송전선이 뻗어 있다
서리의 왕국
모든 음악의 북쪽
해가 낮게 걸려 있다
그림자가 거인이다
머잖아 모두 그림자
자주빛 난초꽃들
유조선이 미끄러져 지난다
달이 꽉 찼다
입새들이 속삭인다
멧돼지 하나 오르간을 연주한다
종소리들이 울려 퍼진다.
시평과 은미
노벨문학상 반열에 들려면 '몆마디로 큰뜻'을 담어야 하나보다.
하기야 수다스런 시인이 가장 고민하는 대목이다.
리릭, 모던니스틱, 반시적 은유와 풍자, 거기에다
유모어러스 해야하면 더 고민거리다.
경치를 그리거나 사진을 보고 시상을 짜내려면
노벨상 근처에 가기는 어려운 듯 하다.
시가 정서적이기를 지나서, 즐기고 가위 눌리듯
굿판을 벌리면 좀 알어 줄려나.
아! '적은 말투로 큰뜻', 이제야 시의 진수를 알 듯 하네..
그 먼나라의 노시인의 상상력과 시상을 들려다 보려니
나도 흥취와 傲遊에 빠져 그 큰상과 거금( 17억원)에 어이 없이 매려된다.
당선시를 뽑는 심사위원의 속셈은 이해할수 없지만
현대시의 속성을 모두 담어 북극의 스산한 '서리 왕국' 사람들의 심사를
조용히 달래 준 것이 먹힌듯 하다.
이 하이구에 나타나는 '송전선' '유조선' '멧되지와 오르간' 은
자못 모던니스틱 하면서 반시적인 모든 요소를 지니고 있다.
거기에다 치열한 은유와 유모어는 한때 노벨 문학상에 후보에
몇번 오른 칠래의 "니콜르 빠라'의 반시를 상기 시킨다.
작품의 질과 품격이 높은 것은 감히 거론 할수 없지만
다분히 국제정치적인 면이 없지 않다.
4절 12행으로 구성된 하이구를 드려다보지요.
간결하여 매 절이 주는 이메지는 너무나
선명하다. 그리고 4절의 기승전결도 잘 정리 되있다.
제 1절에서 송배전선, 서리, 그리고 열등의식)의 북쪽의 낮은
음악성을 조용히 개진한다. 반시적이면서도 너무 건조 하지않고
리릭 하면서 달콤하지 않은 작품의 오픈닝이 무었을 말 하려는지 짐작케 한다.
아름다운 산과 들이 등장하지 않고 쇠부치로 얼거놓은 송배전선이
이시의 모던니즘을 대표한다.
우리의 서정시의 낭만은 이제 그만하자는 발상이다. 전기가
발명되기전의 등불이 맑혀 주던 서정과 낭만을 읊을 여유가 없는 듯하다.
거기에다 늘 깔려 있는 '서리 왕국'에서는 낭만을 즐길 배경은 아니고
콧 노래부르며 시를 즐길 수는 없겠다.
'모든 음악의 북쪽' 행은 독일 불란서 이태리를 비롯한 정통적인
남쪽 음악의 나라들에 비해서 북쪽에 위차한 스칸디나 반도의
열세를 자인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만의 세계적인
음악가 나 예술가 없는 것은 아니다.
후기 낭만파 Grieg와 현대회화의 기초를 다룬 뭉크의 '절규' 같은
회화가 유럽의 예술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금년 노벨문학상 수상의트란스트뢰메르는
이러한 모습을 조용히 관조하면서 주위에서 일나는
경제적 실질적 불만을 신랄하게 은유로서
비판하고 일께우며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노벨상 위원회가 주목한 듯하다.
제2절에서 해가 낮게 걸려있다'
시인이 사는 나라의 백야현상을 의미하는 듯하다.
초저녁 같은 白夜가 계속되고 사람의 그림자는 길고
큰 거인으로 남어 돌아 간다.
초현실적인 세계에서 사는 착각을 일으킬수 있다.
사럼들은 자아를 잃고 그림자로 남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백야가 없는 우리가 사는 이곳에서도 그림자처럼
영혼도 육체도 없이 그림자 처럼 살어가는 산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제3절, 화자는 분명 자주빛 난초꽃이 만발한 해변가에 서있다.
낭만적인 수평선위로 뭉개구름과 망망 대해를 바라보고 있을쯤, '
유조선이 미끄러저 지난다' 우리 환경오염의 주범인 유조선의 등장은
바로 반시적이고 드라마틱하다. 그뿐이랴, 세계 오일 재벌의 등장과
그 거대한 조선소의 거부들의 재산이 수평선 너머로 '미끄러 지듯
지나간다'.
힌 돗을 단 멋진 요트가 아닌 못 생긴 유조선이 '자주빛 난초꽃'을 흐트려
놓고 말었다. 그래도 어쩔수 없이 '달은 떠오르고' 그 모습은 꽉찬 밝은 모습이다.
기막힌 은유이고 이시의 정점이다.
어느 대통령의 말의 '개는 짖어도 기관차는 달린다' 처럼
역사는 흐르고 시인이 보고 느끼는 것이 기억으로 남어야 했다.
제 4절에서 시인은 좌절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윤동주의 서시에서 처럼 잎새는 살어서 속삭이고
다시 생명체를 불어 넣는다.
아! 그러나 노골적 풍자의 '멧되지의 올르간 연주'는
거들먹거리는 정치꾼, 사이비 종교인, 사기성의 기업가,
아는 체하는 지식인을 오르간 치는 '멧되지'로 비유 풍자 했다.
이는 노벨문학상적이다. 그리고 평화의 교회 종소리는 울려 퍼졌다.
그 시인은 세상을 향해 미소 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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